내 양심은 0.05 만큼 썩었을지 모른다.

건전지 도둑

by 감성의사 김동훈

비교적 최근, 혹은 먼 옛날의 일이다.

사무용품으로 공동구매한 듀라X 건전지.

이 녀석이 영롱하다. 이름부터가 일을 잘할 것 같고, 우리 집 건전지보다 전력이 몇 배는 좋을 것 같다.

가령 백열전구에 연결한다고 치면 전구가 왠지 평소보다 더 반짝거릴 것 같다는 말이다.


우리 집 체중계가 얼마 전부터 말을 안 듣는다.

원인인즉슨, 배터리가 노쇠하여 다 닳았기 때문임이 틀림이 없으리라 짐작한다.

변변찮은, 어느 한 군데 밀집되지 않고 살이 골고루 붙어있는 평균체중 보다 10kg 남짓 더 나가는 보통의 남성을 얇은 투명한 은빛 사각형 형태를 가진 세라믹 선반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려대니 제 아무리 잘 만들어진 상품이라 해도 체중을 버텨내기 힘이 들었나 보다. (사실은 15,000원 남짓한 녀석이라 많이 튼튼하진 않았을 것이다.)


체중계를 살려보려 듀라X 건전지 3알을 유니폼 주머니에 넣는다.

'글쎄, 나는 사무용품은 사비로 사니까 이정도는 괜찮을 거야'

물론 실제로도 공동구매한 비품을 이용한 기억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문득 생각해본다. 가져온 건전지 세 개는 수치로 나타내자면 몇 정도의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무(無) 행동을 0 아주 질 나쁜 흉악범죄를 10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아마도 0.05 정도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피식 웃고 만다.


비품 공구에 참여하고, 비품은 쓰지 않아 약간의 억울함을 더해버린 등가교환으로 비품을 아주 소량, 몰래 게눈 감추듯 가져가버리는 그런 행위의 점수 말이다.


(※ 주의 : 사실에 허구를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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