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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파 Jun 21. 2021

여정윤이 아니라 윤여정

[끼니 파트Ⅱ #10] 우리의 고유이름을 바꿔 부르는 서양인들에게

 대학 시절이었다. 초여름 햇볕에 얼굴을 태우며 잔디밭에 누워 있었다. 한 친구가 다가와 말한다.       

  

 “야, 우리 분식집 가서 ‘쿨 누들(cool noodle)’이나 먹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난 그냥 학생식당에서 ‘헌드레드 하프(hundred half)’나 먹을래.”     


 예상한 분도 계시겠지만, cool noodle은 ‘냉면’이고 hundred half는 ‘백반’이다. 친한 사이이다 보니 장난스럽게 말해도 대충 뜻이 통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언론에서 한식에 대한 엉터리 영어메뉴판을 지적했다. 대학 시절 친구와 농담 식으로 주고받던 콩글리시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육회 = six times

 곰탕 = bear tang

 칼국수 = knife-cut noodle

 돼지주물럭 = massage pork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이라고 했다. 적지 않은 식당에서 저렇게 표기하고 영업을 한다고 했다. 이것이 국정감사에서 지적됐고 한국관광공사는 잘못 사용 중인 수백 개의 한식 표기를 바로 잡아야 했다.


 수정안에 따르면 육회는 beef tartare, 곰탕은 beef bone soup, 칼국수는 noodle soup, 돼지주물럭은 marinated grilled pork 등으로 고쳐졌다. 오류를 바로잡은 건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고유한 음식명을 굳이 외국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시간은 흘렀다.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면서 한국음식도 많이 알려졌다. 이젠 한식의 고유 표기만으로도 뜻이 통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비빔밥이다. ‘Bibimbap’이라고 하면 외국인도 알아듣는다. 굳이 rice를 vegetable과 mix해서 어쩌고 한 음식이라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떡도 그냥 ‘Tteok’이라고 쓰고 갈비도 ‘Galbi’라고 쓰는 추세다. 이에 더해 우리가 만든 신조어인 ‘먹방(먹는 방송)’은 ‘Mukbang’으로 표기돼 세계공용어가 되었다.      


 이쯤에서 우리의 영어 이름 표기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홍길동’을 소개할 때 ‘마이 네임 이즈 길동홍’이라고 하지 말자는 얘기다.



 다들 알다시피 동양권에선 성(姓) 다음에 이름이 온다. 서구권에선 반대로 이름 다음에 성이 온다. 즉 도날드 트럼프의 이름은 도날드고 성은 트럼프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나’ 보다는 ‘우리’를 중시하는 동양권에선 성이 먼저 붙고 ‘전체’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하는 서양권에선 이름을 먼저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이것은 옳고 그른 문제가 아닌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구 사람을 부를 때 있는 그대로 그들의 이름을 인정한다. 우리 식으로 트럼프 도날드라고 하지 않는다. 반면 서양인들은 우리의 이름을 부를 때 자기 식으로 바꿔 부르는 경향이 있다. 김연아를 ‘연아김’ 박지성을 ‘지성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문제가 있다. 이름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자기들 입맛대로 성과 이름을 바꾸는 건 어불성설이다.      



 서양인들은 그렇다 치자. 왜 우리 스스로가 성과 이름을 바꿔 소개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영어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마이 네임 이즈 길동홍’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름은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마이 네임 이즈 홍길동’ 이라고 정확히 말하되 혹시라도 헛갈려 하는 서양인이 있다면 “우리의 이름 순서는 너희와 반대야”라고 간단히 설명하면 끝이다. 그런데도 계속 자기들 식으로 이름을 바꿔 부른다면 그건 그들의 잘못이지 우리 탓이 아니다.      

 

그래도 요즘엔 조금씩 추세가 바뀌는 듯해 다행스럽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을 ‘준호봉’이라고 하지 않고 ‘봉준호’라고 정확하게 부르는 걸 봤을 것이다. 영국 스포츠 채널에서도 손흥민을 ‘흥민손’이 아닌 ‘손흥민’이라고 부르는 캐스터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조금 아쉬웠던 건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한국의 자랑스러운 배우가 '윤여정'이 아닌 '여정윤'으로 소개됐다는 점이다. 계속 노력해야 한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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