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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파 Jul 22. 2021

친절한 비수에 대처하는 법

[끼니 파트Ⅲ #1] 휴게소에서 만난 주책바가지 아저씨

 어느 가을날이었다. 조상님 벌초 행사가 있어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금요일 오후여서 손님이 은근히 많았다.  버스가 1시간 30분쯤 달리다 휴게소에 정차했다. 작지만 깔끔해 보이는 곳이었다. 고속도로 여행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휴게소에서의 군것질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가 우동을 시켰다. 뒤를 보니 중년 커플이 핫바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버스 앞좌석에 앉았던 사람들이다. 그들 근처로 할머니가 지나갔다. 버스에서 중년 커플 건너편에 앉았던 할머니다.      


 “할머니, 뭐 드시려고요?”     


 중년 여자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돈 아껴야 한다’며 ‘그냥 물이나 마시겠다’고 했다. 그러자 여자 맞은편에 있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저희가 사드릴게요. 드시고 싶은 거 골라보세요.”

 “괘...괜찮아요.”

 “괜찮긴요. 연세 드셨을수록 맛있는 거 많이 드셔야 해요.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요. 제가 사드릴게요.”     


 남자가 김밥을 추가로 주문했다. 할머니가 머뭇거리다 옆자리에 앉았다.      


 “고마우이.”

 “많이 드세요. 이제 맛난 것 드실 시간도 별로 없으시잖아요. 드실 수 있을 때 챙겨 드세요.”     

 

 말을 마친 남자가 맥주를 들이켰다. 얼마 후 내가 주문한 우동이 나왔다. 우동을 먹으면서도 중년 커플과 할머니가 신경 쓰였다. 특히 남자의 말투가 거슬렸다.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옆에서 듣기에 불편했다.      


 휴식 시간이 끝나고 승객 모두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출발한 이후에도 중년 커플은 옆자리 할머니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여자는 그런대로 조신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남자가 문제였다.     


 “어디 놀러 가는 길이세요?”

 “뭐, 그냥.... 손자 보러 가는 길이에요. 놀러 다닐 여유는 없고.”

 “아이고,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 그러세요. 부지런히 좋은 것도 보시고 재미있게 놀러도 다니고 그러셔야죠. 그래야 후회가 없죠.”

 “......”     


 결국 할머니가 입을 다물었다. 듣기 싫다는 눈치였다. 할머니가 대꾸를 안 하니 남자가 조금 머쓱해 했다. 그는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정(情)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너무 주책이었다. 할머니께 먹을 걸 사드리고 싶었다면 그냥 사드리면 된다. ‘맛난 것 드실 시간이 별로 없다’느니 어쩌니 할 필요는 없다. 할머니가 놀러 다닐 여유가 없다고 하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된다.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 어쩌고 할 필요는 없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옆자리 여자가 제지에 나섰다.      


 “자기는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그래!”

 “내가 뭘?”

 “할머니가 알아서 놀러 다니시겠지. 뭘 그렇게 참견을 하고 그래.”

 “아니 난 그냥, 할머니를 위해서....”

 “적당히 해.”     


 여자는 남자를 자제시킨 후 할머니를 보며 “괜찮으시죠?”라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다.      


 “괜찮아요. 곧 죽을 할망구 걱정해 주는 건데 뭘. 근데 나 건강해. 오래 살 거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조용한 목소리였으나 말속에는 뼈가 있었다. 남자의 오지랖에 기분이 상했다는 걸 확실히 알리는 말이었다. 이후 남자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덕분에 나도 편안해졌다.      


 남자는 친절한 말투로 할머니께 굉장한 실례를 한 것이다. 삶에 대한 애착은 젊은이나 노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걱정해 주는 척하며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를 남발한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설마 진짜로 저렇게 말했을까....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현실이었다. 그렇게 눈치없이 말하는 인간이 실제로 눈 앞에 있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남자였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 외엔 다른 설명 거리를 찾기가 어렵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상대를 은근히 아프게 하는 인간 유형을 만나곤 한다. 서로 간 유지해야 할 거리를 지키지 못하고 선을 넘나드는 인간형이다. 이런 사람을 상대하는 건 쉽지 않다.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선을 넘는 경우가 많아서다. 웃는 낯에 침을 뱉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친절한 비수에 계속 찔려야만 할까. 그렇지는 않다. 큰소리를 내기 어렵다면 표정으로라도 ‘당신의 실언 때문에 상처받았다’는 티를 명확히 낼 필요가 있다. 상대가 웃으며 얘기하더라도 나는 절대 웃으면 안 된다. 기분 나빴다는 티를 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다. 


 좀 더 세련된 방법은 말로써 내 기분을 설명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잘못 얘기했다간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기에 잘 돌려서 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중년 커플에게 건넨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꽤 센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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