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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파 Jul 26. 2021

한 입도 못 먹고 버린 김치찌개

[끼니 파트Ⅲ #2] 착한 척의 후회는 없다. 다만....

 신림동 고시촌의 한 고시학원에서 운영부장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다. 겉으론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제 업무는 노가다였다. 사실상 모든 학원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였고 야근도 밥 먹듯 했다. 수강생 관리, 모의고사 감독 등의 고급 업무도 있었지만, 일손이 부족할 땐 칠판 닦고 지우개털이까지 해야 했다.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사실상 출퇴근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학원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했다. 이처럼 일이 많았던 건 인력충원에 소극적이었던 학원장 탓도 있지만 나의 ‘착한 척’도 한몫했다. 스스로 말하기 낯간지럽지만, 당시 나는 부하 직원들에게 인간적이고 좋은 상사였다(고 생각한다).     


 직원들이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게끔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소위 ‘빵꾸’를 내도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웃어 넘겼다. 물론 짜증 날 때도 있었지만 착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굴었다. 그래서였을까. 결국 대부분의 일을 내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신규강의 개설 문제로 야근을 한 다음 날이었다. 간만에 서울대 주위를 돌며 산책을 했다. 그러다 좀 더 욕심을 내 신림역 인근으로까지 내려갔다. 새벽까지 일했기에 오전엔 시간 여유가 있었다. 식사를 하고 가기로 했다.


 근처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켰다. 휴대용 가스레인지에서 직접 끓여 먹는 방식이었는데, 꽤 푸짐한 양이 나왔다. 보글보글 끓으며 주위에 냄새가 퍼졌다. 맛을 보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그때,     


 지잉지잉!     


 휴대폰이 울렸다. 액정을 확인하니 학원이었다.     



 “부장님, 큰일 났어요. 빨리 좀 도와주세요!”     


 여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뭐지? 급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치찌개를 단 한 숟가락도 맛보지 못한 채 카운터로 향했다. 식당 주인도 놀라 눈을 껌뻑거렸다. 돈을 내고 나오자마자 택시를 탔다.     


 ‘대체 무슨 빵꾸가 난 거야!’     


 마음을 졸이며 학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어라,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외로 평온했다. 난장판이 돼 있을 줄 알았는데 평소랑 다를 게 없었다. 전화한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알고 보니 강의 배포자료가 부족해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옆 책상 아래에 추가 자료가 있었는데 찾지 못한 모양이었다. 물론 중요한 자료이긴 했다. 그래도 옆자리 동료나 관리실장에게 말해도 되는 문제였다. 내가 무서운 사람이었다면 이런 사소한 빵꾸는 부장이 알기 전 자기들끼리 쉬쉬하며 처리했을 것이다. 워낙 편하니 동네 오빠 찾듯 나부터 찾은 모양이었다.      


 ‘아, 너무 잘해줘도 안 되는구나....’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누굴 탓하랴. 처음부터 그렇게 길들인 내 탓이지.     


 며칠 뒤 그 식당을 다시 찾았다. 주인이 날 기억했다.      


 “그때 일은 잘 해결하셨어요? 하도 급하게 나가시기에....”

 “뭐, 그럭저럭....”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그때 김치찌개는 어떻게 처리하셨어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헤헤.”     


 주인이 웃으며 둘러쳤다. 하긴 그 이상의 답은 없을 게다. 자기들이 먹었든지 버렸든지 알아서 했겠지.     

 나는 다시금 김치찌개를 주문했다. 얼마 후 푸짐한 찌개가 눈앞에서 끓기 시작했다. 숟가락으로 건더기를 듬뿍 건져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맛이 별로다. 김치 자체가 밍밍해 감칠맛이 부족했다. 깨작깨작 식사를 하는 도중 사장이 계란말이를 내민다.     


 “어, 이거 안 시켰는데?”     


 사장을 쳐다보니 서비스란다. 지난번 식사도 못 하고 돈만 내고 갔기에 미안해서 주는 거라고 했다. 고맙다고 한 뒤 밥 위에 계란말이를 얹어 입으로 가져갔다. 계란말이도 별다른 맛은 없었다. 그래도 해준 성의가 있어 먹긴 먹었지만, 밥도 계란말이도 절반쯤 남기고 말았다.



 카운터에 카드를 내밀며 “아침에 우유 먹은 게 얹혀서 많이 못 먹었네요”라고 둘러댔다. 계산을 마친 주인이 “또 오세요”라고 인사했다. 정감은 있는 곳이었지만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식당은 맛이 본질 아닌가. 친절해도 맛없으면 발길이 안 닿는 게 인지상정이다.      


 몇 달 후 개인 사정이 생겨 학원에 사직서를 냈다. 그만둔 뒤에도 직원들은 한동안 내게 안부를 물어왔다. 착한 척한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연락은 곧 뜸해졌다.     


 ‘내가 그렇게 잘 대해 줬는데....’     


 서운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보상심리는 버려야 했다. 직장은 일하는 곳이지 좋은 상사 추억팔이 하는 곳이 아니기에. 언급했듯 식당은 맛이 본질이다. 직장은 일하는 게 본질이고. 당시 나는 본질이 아닌 것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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