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마늘파 Aug 09. 2021

그저 사랑하는 사람을 늦게 만났을 뿐

[끼니 파트Ⅲ #3] 만두를 먹으면서 만난 어린 중학생

 어느 추운 날이었다. 집에 가다 만둣집에 들렀다. 별 생각없이 주변을 지나다 후욱, 스쳐가는 만두 스팀의 향을 맡은 것이다. 고기만두 포장을 부탁한 뒤 자리에 앉았다. 옆에선 어떤 노인과 여학생이 만두와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노인은 70대로 보였고 여학생은 교복에 중학교 1학년 배지를 달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녀인 듯보였다.



 노인은 여학생에게 간장과 밑반찬 등을 챙겨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여느 할아버지가 그러하듯…. 여학생은 말이 많지 않았으나 밝은 얼굴로 만두와 칼국수를 먹었다. 

 

 그나저나 내가 주문한 만두의 포장이 늦어지고 있었다. 지금 빚고 있어서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조금 짜증났지만 천천히 하라며 쿨한 척했다. 그리고 벽 쪽에 세워 놓은 보온통에서 육수를 한 그릇 받아왔다. 숟가락으로 후루룩 떠먹으며 만두가 나오길 기다렸다. 추운 날씨에 시달렸던 탓인지 뜨거운 국물은 입에 잘 맞았다.      


 육수가 절반쯤 사라졌을 무렵이었다. 음식을 다 먹은 여학생에게 노인이 냅킨을 챙겨주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마쳤다.


 그런데 그들이 밖으로 나간 직후, 내 기분을 잡치게 하는 종업원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어머머머, 진짜야?”

 “그래, 저 사람들 이전에도 몇 번 왔었어.”

 “그럼 딸이란 말이야? 손녀가 아니라?”

 “맞다니까, 아빠라고 부르는 거 분명히 들었다니까.”

 “어머, 웬일이래... 대체 몇 살에 애를 낳은 거야....”

 “할아버지가 주책이네...”

 “호호. 그러게.”     


 수군거림이 아니었다. 주변에 다 들리게끔 대놓고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종업원이 손님 있는 곳에서 다른 손님의 뒷담화를 하는 건 좋은 모습이 아니다. 직원교육이 안 된 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이 만드는 만두까지 의심스러워졌다.


 특히 내 얼굴을 찌푸리게 한 건 남의 가정사에 대해 함부로 주책이네 뭐네 재단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 종업원들의 대화와 뒤늦게 끼어든 주방장의 말을 종합해보니 할아버지가 부적절한 관계나 기타 복잡한 상황으로 아이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좀 늦게 부인을 만났고, 애를 낳은 것이라고 했다(안타깝게도 부인은 몇년 전 병으로 죽었고). 근데 왜.... 



 물론 나이상으로는 사회적 평균치에서 조금 벗어난 아빠와 딸임은 맞았다. 하지만 주책이니 뭐니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노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늦게 만났을 뿐이고, 그 결실로 귀한 딸을 늦게 얻은 것뿐이니까. 


 무엇보다 딸은 자신의 처지를 창피해하지 않았다. 부끄럽거나 창피했다면 늙은 아빠랑 스스럼없이 식당에 올 수 있었을까?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노인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 당사자들이 당당하게 행동하는데 왜 종업원들이 자신들의 좁은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고 험담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것도 주변에 다 들리게끔.      


 씁쓸했지만 종업원들에게 훈계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어서 그냥 텁텁한 표정으로 주문한 만두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후 포장한 만두가 나왔다. 나는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마무리 짓고 말았냐고? 아니다. 나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후 다시는 그 만둣집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 만둣집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며 나만의 복수를 마쳤다.

이전 02화 한 입도 못 먹고 버린 김치찌개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끼니를 추억하며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