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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파 Aug 13. 2021

매니저직을 거절하고 설거지를 한 이유

[끼니 파트Ⅲ #4]  절실한 심정으로 주방세제와 식기를 집어들다

 부동산일에서 미끄러진 이후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 내 발목을 잡았다. 다른 여러 시도를 해보았으나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기만 했다. 그러다 몇 해 전, 재정적으로 정말 큰 위기를 맞았다.



 그 사연을 자세히 기술하려면 책 한 권 분량을 써야 하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설명하기로 하고, 어쨌든 당시 나는 정말 어려웠다. 휴대폰 요금조차 해결을 못 해서 와이파이 되는 곳에서 카톡으로 최소한의 소통만 하고 살았다.


 당장 먹고 사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여기저기 알바 자리를 알아보았다. 다행히 두 곳에서 내게 관심을 보였다. 한 곳은 패밀리 레스토랑이었고 다른 한 곳은 꽤 알려진 샌드위치 업체였다. 요식업체라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제안한 업무는 크게 달랐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선 설거지 업무를 제안했고, 샌드위치 업체에선 매니저직을 제안했다. 

 

 커헉! 매니저라니.     


 속으로 놀랐다. 애초 샌드위치 업체에선 주방보조를 구한다고 했었다. 주방일 하러 간 사람에게 느닷없이 매니저를 제안하니 고맙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지사장은 야무지고 야심도 있어 보였다. 그는 체인점을 몇 군데 더 낼 계획이었다.     


 “몇 달간 일을 배운 후 매니저로서 체인점 관리를 맡아 주세요.”     


 지사장의 말이었다.       




 집에 돌아온 뒤 고민을 해보았다. 설거지를 하느냐 매니저를 하느냐. 답은 곧 나왔다. 며칠 후 나는 출근을 했다. 설거지하러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다들 의아할 것이다. 대체 왜 매니저 자리를 마다하고 설거지를 한 거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 절박함 때문이었다.


 샌드위치 업체 지사장이 내게 매니저직을 제안한 표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 취사병 경력

 - 제과·제빵 자격증

 - 꽉 찬 나이

 - 다양한 사회이력

 - 그럭저럭 성실해 보이는 인상     


 그러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절박해 보여서’였다.      


 “그 나이에 알바 자리라도 찾으러 다니시는 걸 보면 형편이?”

 “네... 무척 안 좋습니다.”

 “상당히 절박한 환경이겠네요. 그쵸? 새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 나이니까요.”

 “네... 맞습니다.”

 “절실한 상황이니 무조건 열심히 일하겠네요. 뼈를 깎는 각오로 말이죠.”

 “네... 그...그렇죠.”     


 이후에도 그는 나의 절실하고 절박한 상황을 계속 언급했다. 그러면서 매니저로 채용하는 걸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고 했다. 나는 조금 불편했다. 내가 절박한 것과 뼈를 깎는 각오로 일하는 것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면접을 마친 후 인터넷 취업카페에 글을 올려 의견을 물었다.      

 ‘아르바이트 면접 본 업체에서 생각보다 좋은 자리를 제안했다. 그런데 절실함을 필요 이상 강조하는 지사장 때문에 부담스럽다. 갈까 말까 고민이다.’     


 얼마 후 댓글들이 달렸다.      


- 그런 곳은 가는 게 아니다. 책임질 일만 많아진다.

- 절실함을 약점 잡고 야근을 밥 먹듯 시킬 것 같다.

- 그런 곳에 가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아야 한다. 절박하니까.     


 취업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인지라 내가 껄끄러워하는 부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결국, 샌드위치 업체 매니저일을 포기하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설거지를 하기로 했다.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편할 것 같았다. 사실 두 곳의 급여차이도 그리 크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후 샌드위치 업체에 연락했다. ‘좋게 봐주신 점 고맙지만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지사장이 ‘대체 무슨 이유냐?’고 물었다. 직접적으로 말하기가 미안해서 ‘개인 사정 때문’이라고 에둘렀다.

      

 사실 그 지사장님은 고마운 분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나를 좋게 봤기에 책임있는 자리도 제안했던 것일 테니. 다만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조금 부족하셨던 것뿐이다.

       

 각설하고,

 일자리가 절실한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의 사정이다. 고용주는 계약관계에 따라 약속한 일만 시키면 된다. 그 사람의 절박함을 강조하며 이용하려 들면 안 된다. 직장은 그럴 권리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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