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마늘파 Sep 13. 2021

그 시절 롯데리아에선

[끼니 파트Ⅲ #6]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게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서울 덕수궁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울시의회 본관이 나온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그곳은 세종문화회관 별관이었다. 각종 문화공연이 열렸으며 방학 땐 만화영화를 상영했다.


 친구들과 그곳에서 야구 만화를 본 뒤 이현세의 ‘설까치’와 이상무의 ‘독고탁’ 중 누가 더 위대한 투수인지를 두고 피 터지게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만화영화를 본 뒤엔 명동으로 이동해 롯데리아 햄버거를 사 먹곤 했다. 햄버거 전문점이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극장에서 만화영화를 본 후 햄버거 전문점에서 세트 음식을 먹는 건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특권이었다.      


 그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친동생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화영화를 본 뒤 명동 롯데백화점으로 이동했다. 일단 백화점부터 구경했다.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실컷 들여다 본 후 지하로 내려갔다.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 먹기 위해서였다. 지하 공간에 놓인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 일단 간이의자에 앉았다.      


 “테이블82, 1번 세트. 테이크아웃.”

 “101번 홀, B세트랑 프렌치프라이. 땡큐!”     


 점원 누나들이 외치는 말들이 참 멋있게 들렸다. 일단 영어니까 뭐....      


 치즈버거 세트를 시킨 후 다시 간이의자에 앉았다. 잠시 뒤 맞은편 간이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젊은이였다.      


 “너희들 만화영화 보고 왔니?”     


 젊은이가 우리에게 물었다. 동생이 들고 있던 만화 팸플릿을 본 모양이었다. 내가 ‘네’라고 대답하자 그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의 옆에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햄버거를 먹고 있었다.       


 “야, 천천히 먹어라. 체하겠다. 콜라도 좀 마시고.”     


 젊은이가 중학생에게 말했다. 일행인 모양이었다. 중학생은 햄버거와 콜라를 먹고 있었고, 그는 물만 마시고 있었다.     


 “요즘 애들 참 좋겠다. 방학이라고 만화영화도 보고 햄버거도 먹고.”     


 그가 다시 말했다. 그런 그를 중학생이 흘끗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손을 저으며 “아니야, 혼잣말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먹어”라고 말했다.     



 잠시 뒤 우리가 주문한 치즈버거 세트가 나왔다. 오랜만에 먹는 햄버거의 풍부한 맛을 만끽하며 꼭꼭 씹어 먹었다. 먹으면서 그 젊은이와 몇 번 눈이 마주쳤다. 그는 바빴다. 우리의 먹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옆자리 중학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몇 분 후 중학생이 다 먹은 듯 휴지로 입가를 닦아냈다. 햄버거는 1/3가량 남긴 상태였다. 중학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젊은이는 일어서지 않았다. 중학생이 밖으로 나갔다. 젊은이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어? 같이 온 게 아닌가 보네?”

 “그러게....”     


 나랑 동생은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았다. 젊은이가 하도 천연덕스럽게 행동을 하기에 중학생과 일행인 줄로만 알았다. 형제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어쨌든 나랑 동생은 다시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다.       


 우당탕!     


 갑자기 의자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젊은이가 급히 일어나면서 의자가 넘어진 것이었다. 그는 빠른 손놀림으로 중학생이 남긴 햄버거를 입에 욱여넣으며 도망치듯 밖으로 나갔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껏 그가 했던 자연스러운 행동들은 모두 햄버거 한입 훔쳐 먹기 위한 연출이었던 모양이다. 황급히 롯데리아를 빠져나가는 그를 보며 주위 사람들이 혀를 찼다.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네.”     


 나는 뭔가 오싹했다. 그가 우리 옆에 있었다면 분명 나와 동생의 햄버거를 노렸을 테니까.     



 당시는 풍요와 배고픔의 과도기 단계였다. 감사하게도 나는 풍족한 쪽이었기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만화영화도 보고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도 마음껏 사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젊은이는 배고픈 쪽이었기에 햄버거 한입 먹어 보고자 그런 행동을 해야 했다.     


 이후 긴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해프닝은 내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다. 기억이 되살아난 건 내가 실패를 겪고 경제적인 위기에 봉착했을 무렵이었다.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그때의 기억이 위로 떠올랐다. 황당하거나 오싹한 느낌 대신 측은함이 앞섰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얼마나 햄버거가 먹고 싶었으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 싶었다.      


 문득 궁금하다. 그는 현재 어떻게 지낼까. 살림살이 좀 나아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쪼들릴까. 쪼들리더라도 햄버거는 자주 먹을 수 있겠지. 이제 햄버거는 서민의 음식이 됐으니까. 그만큼 세상이 많이 변했다. 나도 변했고, 아마 그도 변했을 거다. 

작가의 이전글 세 개의 선한 마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