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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파 Oct 11. 2021

소문의 위력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끼니 파트Ⅲ #9]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

 어릴 때 자주 가던 떡볶이집이 있었다. 떡볶이에 분홍소시지를 첨가해 맛을 내는 독특한 집이었다. 처음엔 떡볶이만 팔다가 나중엔 녹두빈대떡도 메뉴에 추가했다. 많은 재료가 들어가진 않았으나 돼지기름으로 부쳐내기에 감칠맛이 있는 빈대떡이었다.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포장마차로 시작한 떡볶이집이었지만 장사가 잘되자 정식으로 가게를 얻었다. 일손이 달리다 보니 아저씨도 함께 장사를 했다. 아줌마는 떡볶이를 만들고 아저씨는 옆에서 녹두빈대떡을 부쳤다. 녹두빈대떡 한 장을 밑에 깔고 그 위에 떡볶이 1인분을 올리고 삶은 달걀 한 개를 얹은 메뉴가 특히 인기였다. 동네 아이들은 그걸 ‘삼짬뽕’이라고 불렀다. 배고플 때 삼짬뽕 하나 먹으면 온종일 속이 든든했다.     


 그렇게 삼짬뽕 떡볶이집이 마을의 입맛을 석권해 갈 무렵이었다.


 몇십 미터 아래에 새 떡볶이집이 생겼다. 원래 빙수를 팔던 곳이었는데 떡볶이집으로 업종 전환을 한 것이었다. 대형 슈퍼마켓 앞에 자리를 잡았기에 위치상으론 빙수 떡볶이집이 유리했다. 그곳에서도 녹두빈대떡과 삶은 달걀을 메뉴에 추가했다. 그렇게 삼짬뽕 떡볶이집과 빙수 떡볶이집 사이에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라이벌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빙수 떡볶이집의 음식 맛이 삼짬뽕 떡볶이집에 비해 한참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빙수가 한철 장사라 사시사철 인기 있는 떡볶이로 메뉴를 바꾼 것까진 좋았으나 주종목이 아니다 보니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집 간 경쟁 관계는 싱겁게 끝을 맺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얼마 후 삼짬뽕 떡복이집의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였다. 삼짬뽕 떡볶이집 아줌마는 유방암 환자이고 아저씨는 폐결핵을 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디서 비롯된 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접한 순간 삼짬뽕 떡볶이집으로 향하던 발길이 무거워졌다. 어린 나이였어도 유방암과 폐결핵이 심각한 질환이라는 건 알았다. 유방암이야 음식 만드는 것과 별 상관이 없기에 소문이 사실이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지만 폐결핵은 상황이 좀 달랐다. 어쩌다 그 떡볶이집에 가게 되더라도 아저씨가 부치는 빈대떡만큼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아저씨가 좀 마른 편이긴 했었다).   



 녹두빈대떡이 먹고 싶을 땐 어쩔 수 없이 빙수 떡볶이집으로 갔다. 빈대떡만 먹고 오기가 아쉬워 떡볶이와 삶은 달걀도 함께 먹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 모양인지 소문이 돈 이후 사람들의 발길은 자연히 빙수 떡볶이집으로 향했다. 그러자 빙수 떡볶이집 아줌마는 연신 입을 씰룩거렸다. 다시 두 집 간 경쟁 구도가 시작된 것이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일찍부터 엄마의 심부름이 있었다. 이삿짐 담을 박스를 구해오라는 것이었다. 눈을 비비며 슈퍼에 갔다. 그곳에 삼짬뽕 떡볶이집 아줌마가 있었다. 슈퍼 사장님을 붙들고 뭔가를 하소연 중이었다. 나는 박스를 고르는 척하며 이야기를 엿들었다.     


 “대체 그 여자는 나랑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아줌마가 열변을 토했다. 삼짬뽕 떡볶이집에 대해 악소문을 퍼뜨린 게 빙수 떡볶이집 아줌마라고 했다. 헉, 나는 놀랐다. 원래 말 많은 빙수 아줌마이긴 했으나 그런 식으로 경쟁 가게에 타격을 줬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자자, 진정하시게. 이따가 문 열면 내가 알아듣게 잘 설명할 테니.”     


 슈퍼 사장님이 삼짬뽕 떡볶이집 아줌마를 달랬다. 하지만 아줌마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빙수 떡볶이집이 문을 연 상태였다면 아줌마들끼리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을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우리 집은 이사를 했다. 이에 따라 두 떡볶기집의 싸움이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어린 나이에 깨달았던 건 있다. 소문의 위력이란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진위를 떠나 말이 도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큰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     


 상대방을 음해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네거티브 전략’이라고 한다. 매우 비겁하고 교활한 짓이지만 효과는 어마무시하다. 인간의 잔인한 속성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장점이나 업적에는 시큰둥하지만 약점이나 상처에는 즉각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네거티브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쁨은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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