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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말랭 Oct 27. 2023

작은 도움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어제 매운 떡볶이를 먹은 게 화근이었다. 지릴 빤했다.


사장님... 커피...먹어요...


매운 음식이 잘 받지 않는 체질인데 어제 스트레스받는다고 매운 떡볶이를 먹은 것이 화근이었다. 일 하는 내내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음에도 하필 퇴근길에 또다시 배가 아플 줄이야. 나는 타고 있던 버스에서 급히 내려 화장실을 빌려 쓸 만한 곳을 매의 눈으로 찾고 있었다. 등줄기와 콧등에는 땀방울이 삐질삐질 나기 시작했다. 얼굴은 아마 새하얗게 질렸으리라.


근처에 보이는 병원은 '외부인 화장실 출입 금지'라는 푯말이 떡하니 붙어있었다. 이런. 저기 앞에 약국이 있

길래 약국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뭔가 이미지 상 화장실을 쓰게 해 줄 것 같았다. 살며시 들어가 말했다.


"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데 화상실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화장실이 저- 안에 있어서 못 써요."


띠용. 화장실이 저 안에 있으면 내가 저- 안에 들어가서 쓰면 될 일 아닌가. 아무튼 안 된다고 하니 됐다. 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다른 곳을 탐색했다. 근처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못 참을 것 같았다. 식당에는 화장실이 다 있으니까 얼른 들어가서 빈 홀에 앉아 있는 사장님께 최대한 사정을 말했다.


"사장님, 죄송한데 제가 화장실이 정말 급해서 쓸 수 있을까요?"


돌아오는 대답은 오케이 었다. 그것도 흔쾌히. 아이고 쓰시라며.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나는 얼른 볼 일을 해결했다. 휴 난 살았다. 버스는 아무렴 늦게 타도 괜찮았다. 길 한복판에서 지릴 뻔한 적은 학생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볼일을 보고 나니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 나왔다.


이제 막 저녁 장사를 시작하는 것 같더라. 사장님 입장에서는 내가 손님인 줄 알고 반가워하셨을 것 같은데 화장실이나 빌려 쓰는 불청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흔쾌히 저기 위에 화장실이 있다며 문 잠그고 들어가시라는 말 한마디에 집에 가면서도 내내 고마웠다. 아 안 그래도 내 가방에 갓 내린 커피가 하나 있었는데 그거라도 드리고 올 걸. 이런 센스 없는 녀석.


나는 나중에 거기 가서 밥 한 끼 해야지 할 생각만 했었다. 가게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데 다음에 가면 커피라도 챙겨드리고 와야겠다. 베풀면 돌아오는 법이지. 암 그렇고 말고. 장사를 하면서 배운 게 있다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뿌리면 다 소문 내주고 친구라도 데려 온다. 오늘도 그런 손님이 있었고. 나도 같은 장사하는 입장에서 그냥 있을 수 없지. 내일 그 식당에 커피 배달 예약이요! 식당 사장님께 보답하러. 나에게도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연신 하게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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