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 이게 정말 최선입니까
아래 글타래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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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이상하다. 무고한 이들이 너도 나도 손가락질당하는 세태가. 정작 진짜 죄인은 따로 있는데. 논란이 된 기사의 제목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댓글 만선과 조회수 사냥에 성공하려면 이런 제목을 달아야 하나 보다. 어린 시절 분유를 먹여서 그 결과로 성조숙증이 생겼다는 행간이 읽힌다. 하지만 논문의 요지와는 차이가 있다. 본 연구는 모유 수유가 중추성 성조숙증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후향적 코흐트 조사다. 정확히는 남아를 분유 수유한다면 모유 수유에 비해 16%, 여아에서는 60% 중추성 성조숙증 가능성의 증가가 나타났다. 그러니 연구 결과가 모유 수유의 이로움을 시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성조숙증이 분유 수유로 말미암은 것은 아닐진대, 기자는 함부로 분유가 ― 더 나아가 분유를 먹인 양육자가 ― 아이의 성조숙증을 유발한 것처럼 제목을 뽑았다.
기사를 작성한 이는 의도적으로 상관관계(연관성)를 인과 관계(원인-결과)인 것처럼 확대해석했다. 심지어 논문을 직접 읽어보면 수유 방식과 성조숙증 사이의 인과 관계를 확정할 수 없다는 한계를 연구진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다. 측정할 수 없는 교란 변수 등의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도 분유가 성조숙증을 만든다는 뉘앙스의 기사 제목을 뽑았다. (마지막에 물음표를 붙인 것은 교묘하게 책임을 피하려는 노림수였을까?) 이렇게 자의적으로 해석을 비틀어버리면 없는 논란도 저절로 생긴다. 연구가 아무리 훌륭할지언정, 이런 방식으로 소개하는 기사는 나쁜 기사가 맞다. 이 뉴스에 달린 무수한 원망 섞인 댓글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다.
생활인들은 새로운 발견, 중요한 연구 소식을 언론의 필터를 통해 접할 수밖에 없다. 특히 건강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참조하는 것이 건강 전문 매체인데, 이에 종사하는 기자가 의학 정보 해석의 기초를 몰랐으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많은 클릭과 과격한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직무유기성 기사를 작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극적 제목 때문에 분유를 먹인 양육자는 공격을 당한 셈이 된다. 화가 날 수밖에. 여기에 적당한 혐오 반응이 충돌하면 폭발적 갈등 서사 뚝딱이다. "애엄마들이 무식해서 과학도 인정 못하고 부들거리네 ㅉㅉ" 이런 반응이 뒤따를 줄 기자는 정말로 몰랐을까? 끝없는 죄의식의 바닷속에서 드디어 찾았다. 진짜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한 이를.
왜곡된 정보 흐름을 정상화시키려면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육아라는 주제는 불안과 갈등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아주 살짝만 자극적으로 비틀어도, 훨씬 잘 팔리는 콘텐츠가 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니 부디 나쁜 기사에는 흥분하기 전에 차가워지자. 반응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죄에 합당한 벌이다. 양육 담론을 둘러싼 오염을 걷어내려면 부모의 예민함을 이용하는 매체는 적극적으로 기각해야 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주의력을 약탈하고, 불필요하게 격한 반응을 유도하며, 갈라치기를 통해 억지 갈등을 파생시킨다.
언론은 단순히 논문을 받아쓰는 속기사가 아니다. 얼마든지 주체성을 발휘하여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연구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었을까. 기사의 제목을 더 신중하게 선정할 수는 없었을까. 한국의 모유 수유율이 유난히 낮은 원인이 무엇인지 짚어줄 수는 없었을까. 분유를 먹일 수밖에 없는 양육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성조숙증을 예방할 수 있을지 알려줄 수는 없었을까. 만약 그랬다면 독자들의 반응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연구 주체와 전달자를 모유라이팅이라는 괴상한 신조어로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런 발전적 논의를 기대해 본다. 양육 담론이 죄의 법정을 떠나, 토론의 광장으로 향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