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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호 Sep 15. 2020

가장 뜨거운 곳으로

  태풍이 부는 날이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셔터를 올렸다. 화물칸이 비에 젖지 않도록 창고 안쪽으로 트럭을 반쯤 걸쳐 세웠다. 설치를 나갈 에어컨이 배송 전부터 비를 맞아서는 안 됐다. 접어두었던 방수포를 펴놓고 전표를 살폈다. 오늘 예약 건은 벽걸이 하나와 멀티 하나였다. 끌차를 툭툭 치며 나가야 할 물건들을 찾고 있으니 팀장님은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곤 의자에 앉아 줄담배를 폈다. 시선은 하늘에 고정되어 있었다. 두 번째 담뱃불을 땅에 비벼 끄곤 나에게 말했다.


  “안되겠지?”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필요 없었다. 오후에나 상륙한다던 태풍은 이미 세찬 바람과 비를 쏟아내고 있었다. 오늘은 운동했다 생각하고 밥이나 먹고 가자는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 한편에 출근에 쓴 시간과 차비가 두둥실 떠올랐다. 오늘 일당까지는 받아야 이번 달 차비랑 밥값은 채우는데. 쉴 수 있다고 좋아하기엔 불규칙한 소득이 주는 불안감이 더 컸다.


  “네, 에어컨입니다. 오늘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불어서요. 출고가 어려울 것 같네요. 네.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다시 연락드릴게요.”


  팀장님이 깊게 한 숨을 쉬었다. 사무실 이사를 왔는데 너무 덥다고 오늘 무조건 설치해달라고, 비 안 맞는 곳이니깐 와달라고 했단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실외기를 실었다. 그렇게 우리는 벽걸이 에어컨 하나를 실은 채 태풍을 뚫고 공단 근처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렇다. 우리가 가는 곳에는 에어컨이 없다. 있어도 미지근한 바람만 힘없이 새어나올 뿐이다. 우리의 일은 고객님에게 찬바람을 제공하는 것이기에 따뜻한 바람이 나오면 퇴근할 수 없다. 그게 우리의 일이므로 책임지고 원인을 찾아야 한다. 배관을 새로 용접하고 가스를 주입한다. 다행히 언제 그랬냐는 듯 시원한 바람이 힘차게 나온다. 작업은 끝이다. 하지만 그 찬바람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서둘러 뜨거운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무거운 실외기를 건물 외부에 내려놓는 것도, 땀이 들어간 한쪽 눈을 찡그린 채 벌을 서는 모습으로 에어컨을 들고 서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확신 할 수 없는 내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었다. 알 수 없는 미래는 현재의 나를 흔들어 놓았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열등감을 느끼게 했다. 지하철역이 생겨서 몇 억이 더 올랐다는 입주 아파트에 에어컨을 설치하면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어도 이 집이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 나왔다. 부러웠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사무실에서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찬바람은 누군가에게 삶의 휴식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 찬바람이 내 삶에도 따뜻함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이 찬바람이 계속되는 건 아닐까. 혹은 미지근한 바람 속에서 뜨거운 햇빛과 끈적거리는 공기 속에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나를 괴롭힌다. 그래서 쉬지 못하고 항상 달렸다. 더 뜨거운 곳을 찾아 열심히 일하면, 남들보다 많은 땀을 흘리면 그 순간이라도 불안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고개를 들고 목을 쭉 내밀면 서른이 얼핏 보이는 나이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나의 행복과 생존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들지만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친구들의 소식이 들리는 날에는 하루라도 빨리 나의 삶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채찍질한다. 여전히 모르겠다. 나는 언제쯤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 사이에서 찬바람을 맞을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그때는 오늘을 가장 뜨거웠던 날로 기억하며 웃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올해 에어컨은 이제 끝났다. 그럼에도 나는 중독된 듯 뜨거운 곳을 찾아 땀을 흘릴 예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잠이 들기 어려운 시기니깐.     


최고 복지 : 고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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