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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영 Dec 26. 2019

지극히 미적인 시장_25_제주시 오일장

1년지나 새로운 1년

인천 어시장을 시작으로 1년의 끝은 군산이었습니다.

새로운 1년은 제주시 오일장 소개로 시작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전국의 오일장을 스무 군데 넘게 다녔다. 작은 골목을 차지하는 면 단위부터 몇 백 개 점포가 있는 서귀포 오일장까지 규모가 다양했다. 서귀포 오일장이 참 크다 싶었는데 제주 오일장을 보고 나니 면 단위 오일장처럼 작아 보였다. 제주 오일장은 2·7일에 1000여개 점포가 문을 연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게 오전 10시. 수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흥이 오간다. 흥이 오갈 때 정도 떡고물처럼 묻어가 흥정이 되었다. 사람이나 물건이 막힘없이 흘러 통하는 유통(流通)의 현장이었다.

제주 오일장은 규모도 규모지만 구획 정리가 깔끔했다. 어물전, 채소전, 곡식전 등 비슷한 것끼리 잘 모아 놨다. ‘할망 장터’라고 따로 구획이 있어 텃밭에서 나온 채소를 구경하며 손수 만든 재래식 반찬 맛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눈길을 끈 것이 있었다. 칠게를 소금 쳐서 냉동해 놓은 것과 콩을 볶아 간장으로 버무린 것이었다.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으니 콩을 맛보라 내미셨다. 맛보고는 바로 한 종지 샀다. 볶은 콩의 고소함과 간장의 짭조름함이 맛났다. 반찬 이름을 몇 번 이야기해 주셨지만 귀에 쏙 들어오지 않는 사투리였다. 다시 묻기 죄송해 집으로 돌아와서는 집사람에게 그냥 ‘콩장’이라고 했다.

1000여개 점포가 있는 오일장을 두 바퀴 정도 도니 그제야 12월의 제주 맛이 보였다. 과일전에는 제철 맞은 황금향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었다. 황금향은 우리나라에서 붙인 이름이다. 일본에서 육종한 품종의 정식 명칭은 ‘에히메 28호’ 혹은 ‘베니 마돈나’다. 늦게 익어 만감류라고 하는 종류 중에서 일찍 나오거니와 단맛이 좋아 인기가 많다. 황금향 뒤로 레드향, 한라봉, 천혜향 등이 1월과 3월 사이 나온다. 황금향을 팔고 사는 이가 많지만 사실 12월과 1월이라면 노지 감귤이 1년 중 가장 맛있을 때다. 우리가 감귤 혹은 노지 감귤, 하우스 감귤 하는 것은 ‘온주 밀감’이다. 중국 원산지인 품종을 일본에서 재배하기 좋게 육종한 것이다. 한동안 일본 품종 일색이었지만 근래에는 국내 육성 품종도 많이 재배하고 있다. 감귤은 하우스 감귤을 시작으로 다음해 1월까지 나온다. 늦게 나올수록 감귤의 향과 맛은 최고조를 향한다. 12월 말이나 1월에 나오는 노지 감귤은 감귤이라는 단어를 빼고 향을 대신 넣어 ‘노지향’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향이 좋다. 생산량이 많다 보니 노지 감귤은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귀하지 않다 해서 맛까지 저렴한 것이 아니다. 10월이나 11월에 수확한 감귤이 ‘동’이라면 12월 이후의 감귤은 ‘금’이다.

과일전에서는 황금향이 주인공이라면 생선전에서는 갈치다. 낚시로 한 마리씩 잡아 비늘이 살아 있어 ‘은’자를 붙인다. 제주 은갈치다. 그물로 잡아 비늘이 떨어져 나가서 검게 된 것은 ‘먹’자를 붙인다. 목포 먹갈치다. 종류는 같아도 잡는 방식에 따라 은도 되고 먹도 된다. 갈치는 사시사철 국, 구이, 조림으로 제주 여행에서 한 끼는 먹고 가야 서운함이 없는 식재료다. 연중 나기에 제철 개념도 희미하지만, 그렇다고 제철이 없는 건 아니다. 갈치가 맛있어지는 시기는 지금부터 내년 3월까지다. 갈치 어장의 위치는 바뀌어도 제주 근해를 벗어나지 않는다.

필자가 방문했던 12월 중순은 제주 북동쪽 구좌 앞바다에 어장이 형성됐다. 제주의 여름 바다는 한치잡이 배가, 겨울 바다는 갈치잡이 배가 불을 별처럼 밝히고 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에서 배들이 밝히는 불은 별이 된다. 하늘에서 별이 바다로 한가득 떨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예년과 달리 큰 씨알의 갈치가 잘 잡혀서 평소보다는 조금 싸게 살 수 있다고 한다. 12월의 제주 갈치는 어느 식당을 가든 다 맛있다. 갈치 맛집을 애써 찾을 필요가 없다.

시장을 돌다가 아침 겸 점심 먹을 요량으로 식당 한 군데를 골랐다. 많은 식당이 있었지만 갈칫국과 아귀국 메뉴 팻말에 끌리듯이 들어갔다. 두 메뉴 중에서 고민하다가 갈칫국으로 결정했다. 시내나 사람들 많이 찾는 곳은 갈칫국 가격이 1만5000원 내외다. 조금 비싼 곳은 2만원 정도 한다. 식당 메뉴를 보니 1만원이다. 가격이 저렴해 갈치 양도 적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실한 갈치 토막이 네 개나 들어 있었다. 갈치는 세 손가락 정도의 크기였다. 가격이나 크기 모두 먹기 적당하다. 갈치 크기 구분은 무게로 한다. 저울이 없을 경우는 검지, 중지, 약지 세 손가락 넓이의 ‘삼지’가 보통 한 마리에 1만원 정도 한다. 새끼손가락까지 합쳐 네 손가락 넓이부터는 한 마리에 몇 만원씩 간다. 다섯 손가락 정도 되는 갈치는 중국으로 수출하고 있어 시중에서 보기 힘들다. 제철 맞은 갈치 살에 단맛이 가득하지만 같이 들어가는 봄동, 늙은 호박도 단맛에서 밀리지 않았다. 소금으로 간을 맞춘 국물이 입에 짝짝 붙었다. 오일장 열리는 날에만 문을 열어서 따로 전화번호가 없다. 차섭이네 식당. 오일장 구역 중 5-30번대 구역 근처다. 바로 앞에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어 밥을 먹고 난 후 후식도 즐길 수 있다.

제주 하면 흑돼지도 빼놓을 수 없다. 제주의 수많은 흑돼지 전문점 중에서 특허 받은 흑돼지를 파는 곳이 있다. 축산과학원에서 육종한 ‘난축맛돈’이 특허의 주인공이다. 제주 재래돼지와 한라랜드(랜드레이스 품종)를 교배해 만든 돼지고기로 재래돼지의 단점인 성장성을 보완하면서 맛을 유지하도록 육종한 품종이다. 제주 재래돼지는 13개월 키워도 70~80㎏ 정도다. 일반 돼지가 6개월에 120㎏ 자라는 것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더디 자란다. 더딘 성장성이 재래돼지가 외면받은 큰 원인이었지만 대신 차지고 옹골찬 맛에 그나마 종자가 보존됐다. 삼겹살이나 목살도 있지만 하루 40개 한정 메뉴인 ‘프렌치렉’을 먼저 주문했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돼지고기 부위는 대부분 삼겹살과 목살이다. 일본은 등심도 같이 구워 먹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러지 않는다. 프렌치렉은 갈비뼈와 등심, 가브리살, 삼겹살을 같이 절단한 것이다. 뼈를 축으로 해서 붙어 있는 다양한 부위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난축맛돈 자체도 맛있지만 식당에서 고기를 숙성해 내는 까닭에 농후한 지방 맛에 풍부한 감칠맛까지 더해져 제주에서 먹어 봤던 보통의 돼지고기와는 격이 다른 풍미가 있다. 생고기 맛도 궁금했지만 숙성한 고기만 있어 아쉬웠다. 숙성도(064-711-5212)

들기름 거품 때문에 지저분해 보인다. 대신 국물른 시원하면서 끄트머리에 고소함이 살짝 난다.

몇 년 전부터 미역국 전문점이 우후죽순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다. 미역국 전문점은 광어, 가자미, 소고기, 조개 등 다양한 재료를 써 미역과 궁합을 맞춘다. 제주에도 미역국 전문점이 있다. 물론 여기도 미역과 다른 재료로 궁합을 맞추는데 제주만의 색이 있다. 우선 미역은 비양도 물미역만 사용한다. 미역이 나는 겨울과 봄 사이에는 생것을 쓰고 그 이후는 냉동한 물미역을 쓴다. 마른미역으로 끓인 것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있다. 같이 들어가는 재료는 몇 가지가 있지만 메뉴 최상단에는 옥돔이 차지한다. 순한 옥돔 살과 부드러운 물미역 조합이 꽤 맛있다. 미역국을 주문하면 몇 가지 찬과 함께 어판장에 당일 경매에 부쳐진 생선이 구이로 나온다. 딱새우 미역국도 있다. 보통 딱새우를 제주 특산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여수 소속 배들이 추자도와 육지 사이의 바다에서 잡고는 경매만 제주에다 올린다. 여수보다는 제주에서 딱새우 가격이 좋기 때문이다. 식당 이름이 어감곽(064-805-0020)이다. 어는 물고기, 감곽은 미역의 제주 방언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제주올레’다. 100m가 넘어가면 무조건 차를 타고 이동하는 필자에게 올레길은 꿈에서나 완주하는 길이다. 올레길 여러 코스 중 17번과 18번 코스의 시작과 끝이 동문시장이다. 그 덕에 동문시장 옆에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인 ‘간세라운지’(간세는 게으름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제주올레의 상징인 조랑말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가 자리 잡고 있다. 여행자센터가 올레꾼을 위한 안내센터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문시장에서 고춧가루를 빻고 참기름을 짜서 음식을 만드는 식당도 같이 한다. 복잡하거나 화려한 메뉴보다는 익숙한 메뉴가 많다. 손님들은 떡볶이와 한치튀김을 가장 많이 주문한다. 떡볶이는 밀떡으로 잘 요리해 쫄깃함이 살아 있다. 한치튀김은 솜씨 좋은 일식 주방장이 튀긴 듯 선뜻하다. 떡볶이와 튀김을 따로 먹다가 떡볶이 소스에 튀김을 찍어 먹어도 좋고, 타르타르소스를 찍은 튀김을 떡볶이 소스에 비벼 먹어도 맛있다. 간세라운지 관덕정분식(070-8682-8651)


12월의 제주 식재료 중 갈치나 감귤만큼 단맛이 좋은 식재료가 또 있다. 제주 어떤 곳보다 구좌 지역이 생산량도 많고 맛도 좋다. 바로 당근이다. 평대나 월정리 바닷가 카페에 당근 음료가 많은 이유다. 주황빛이 솟아나듯이 당근이 검은빛 흙 속에서 단맛을 가득 품고 고개 내미는 시기가 12월과 1월이다. 같은 카페의 당근주스라 해도 8월과 12월의 주스 맛은 바닷물의 온도 차이만큼 크게 난다. 향이나 단맛이 사뭇 다르다. 맛있는 구좌 당근이라도 요리용과 주스용 품종이 따로 있다. 대부분 요리용 당근 품종을 심는다. 단맛이 좋다고 해도 주스용 당근과는 비교 불가다. 올 초 충격적으로 맛있는 당근을 만났었다. 송당 지역의 유도균 농부가 재배한 당근이었다. 당근이 이렇게 맛있었나 할 정도로 단맛이 세포 하나하나에 가득 차 있었다. 주스용 당근은 모양새가 썩 좋지 않다. 누가 보면 시장에 내다 팔지 못할 거라 여길 정도다. 어차피 갈아서 주스 짤 것인데 모양만 찾아 사면 딱 빛 좋은 개살구 사는 격이니 나만 손해다. 어디 당근 살 때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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