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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인생여행, 제주 국수 여행
by 홍난영 Apr 16. 2018

현지인처럼 여기 멸고 하나요!

고기국수 2편 꽁순이네

12시 10분 전, 식당에 들어가 멸치고기국수를 주문했다. 주문과 동시에 면을 삶고 한 그릇이 나오는 시간은 약 7분. 멸치육수의 깔끔함을 느끼며 먹는 시간 대략 15분. 그 사이 듬성듬성했던 자리는 이내 시끌시끌 채워졌다. 이런 식당이야말로 동네 식당이다.  


사람들은 근처에서 일을 하다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킬 즈음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식당으로 몰려온다. 나는 그 순간이 되게 묘했다. 나만 정적이고 내 주변의 사람들은 휘릭 휘릭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이런 느낌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자주 나오지. 무언 가에 완전히 집중한 순간이다.  


나는 국수를 먹고 있고, 서서히 그 속으로 완전히 빠져든다. 나만 시공간을 이동한 듯,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순간이 된다. 국수가 입에 들어갈수록 주변엔 정적이 흐르고 오로지 나만 국수를 먹는 듯 흠뻑 빠져드는 맛이었다.  


멸치고기국수는 멸치육수에 고기 고명이 올라오는 고기국수의 응용판이다. 동네 분들은 ‘멸고 하나~’라고 외치며 들어온다. 비빔냉면을 줄여 비냉이라고 하듯 멸치고기국수는 멸고다. 나도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멸치고기국수를 두세 번 먹고 나니 자연스럽게 ‘멸고’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었던 문화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고기국수의 국물이 진하여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멸치고기국수를 먹어 보면 좋겠다. 이건 맑은 고기국수다. 국물에서 마른 멸치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고기국수를 먹을 땐 하지 않았던, 하지만 멸치고기국수만큼은 국물 맛이 좋고 깔끔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행동이 하나 있다. 그릇을 들고 국물 마시기가 그것이다. 사실 국수 여행을 다니며 이런 행동은 거의 하지 않는데 여기에선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 음식만화에서 맛있는 걸 먹은 주인공이 이마를 ‘탁’ 치듯 나는 국물을 그릇 채 들고 들이킨다.  


일반 멸치국수와 다른 점은 당연히 고기 고명이다. 멸치국수 자체만으로도 맛있지만 고기 고명까지 올라오면 멸치국수를 먹을 때 와는 또 다른 국수의 매력이 느껴진다.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까. 2천 원 정도만 더 내면 배부르게 두 가지 맛의 국수를 먹을 수 있다.  


고기를 먹으면 아무래도 김치와 깍두기에 손이 가게 되는데 이곳의 특징은 식당 옆 텃밭에서 기른 무와 배추로 반찬을 만든다는 거다. 메뉴판에 표시된 원산지를 보니 100%는 아닌 것 같지만 계산하며 물어보니 사장님께서 밭에서 키운 채소를 사용한다고 하셨다. 


폰카로 땡겨 찍어서 그림처럼 나왔다


제주엔 예로부터 ‘우영팟’이라는 게 있었다. 우영팟은 돌담이 쌓인 작은 텃밭으로 제주 집 마당엔 하나씩 꼭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농가주택에 가보면 우영팟이 꼭 있을 거다. 제주사람들은 거기에서 각종 채소를 길러 먹는다. 그중에 무와 배추는 어지간하면 다 있다. 옛 시절, 밖으로부터 음식을 구할 수 없을 때 제주민들은 우영팟을 십분 활용하여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식당에서 농사까지 짓는 곳은, 그 규모가 크든 작든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식당만 운영하기에도 얼마나 바쁜가. 이런 식당일수록 나는 점수를 더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오전 11시부터 3시까지만 열더니 이젠 저녁 7시까지 연장했다. 여행자 중에는 3시까지만 열어 못 먹고 돌아간 분들도 많은 것 같은데 이젠 조금 더 먹기 편해졌다. 그래도 닫는 시간은 7시. 


관광지나 시내를 제외하곤 보통 동네 식당이 대부분 이렇다. 나도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무조건 이른 저녁에 저녁 국수를 먹고 들어갔다. 근처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곳을 여행한다면 이 점을 꼭 확인해야 한다.  


든든한 멸치고기국수를 먹고 기분도 좋아져 5km 정도 떨어져 있는 곽지과물해변으로 달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바다다. 그날따라 유난히 파도가 거친 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뜨끈한 국수 덕에 거친 바람에도 끄떡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아, 제주가 정말 좋다. 땃땃한 국수 한 그릇 먹고 거친 바다를 바로 볼 수 있는 곳. 그것도 집에서 1시간 안에 올 수 있는 곳. 그런 제주가 너무 좋다. 



덧. 


최근에 지나가면서 꽁순이네를 보았다. 점심때였고 연휴이기도 했지만 식당 앞에 세워진 차들이 예전보다 많이 늘어나 있었다. 검색을 통해 확인해도 ‘맛집’으로 등극한 모양이다. 수요가 늘어나면 예전만큼 텃밭을 통한 김치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겠다. 텃밭 배추의 생산량은 한계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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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내게는 인생여행, 제주 국수 여행
제주에서 전자책 출판사 '탐탐일가'를 운영하며 유기견 출신 강아지 '탐탐' & '제제'와 살고 있습니다. 소소하게 글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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