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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도 다시 써보기로 했다

지금 다시 그때가 떠올랐다.

by 비범한츈


현업 디자이너로 일한 지 벌써 12년 차가 되었다. 누군가 한 분야만 10년 넘게 파면 그 분야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하였는데, 그 기간은 상향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디자인 정체기에 들어선 것인지, 요즘 디자인 아웃풋을 내는 과정에서 나 자신이 점점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이것은 갑자기 느낀 기분이 아니라, 해를 거듭할수록 현타가 매우 심하게 오는 현상을 겪고 있다)


오랜만에 회사에서 교육을 하나 듣게 되었다. (이것마저 아주 억지로.. 필수 이수를 해야 해서..) 의미 없어 보이는 형식적인 틀을 갖춘 사내교육은 몇 년이 지나도 똑같이 지루하게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하여 본격적인 수업 전 수강생들에게 링크를 보내주었다. 간단한 설문을 통해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아주 전형적인 교육의 시작포맷이다. 어차피 견뎌내여 할 시간이기에 별생각 없이 링크를 열고 하나하나 체크해 본다. 의미 없이 시작했는데 왠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기가 힘들었다.


나는 인간 중심적이기보다는 오히려 목표 중심적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아니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회사에서.. 혹은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나 자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12년 전, 회사에 입사 후 한동안 내가 작성한 글이 뜸한 적이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내가 좋아하던 일을 잠시 내려둔 것이었다. 그 사이에 나는 모든 일에 매우 둔감해졌다. 현실에 안주하며 iOS가 디자인의 대 혁신을 가져온 버전이 나왔을 때도 직장동료의 정보보고를 보고서야 알아챘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던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공유까지 놓으며 나는 큰 바다 한가운데 둥둥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정신 차리며 시작했던 게 바로 이 브런치였다.


지금 다시 그때가 떠올랐다.

나 자신을 다시 찾아야겠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뭐라도 써보기로 했다.

회사, 육아 핑계 접어두고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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