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방황하는 30대
대학교 전공, 대학원 전공과도 무관한 일에 매력을 느낀 내가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그래도 어때. 100세 시대에 내가 해보고 싶은 일 다하고 살아보지 뭐. 디자인과 영상 편집이 언제까지 재미있을지는 또 모르는 일이잖아. 이것저것 하다 보면 나랑 꼭 맞는 일도 찾게 되지 않을까?
첫 외주 덕분이었을까. 나는 이 직업이 나랑 정말 잘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국비 학원 과정 수료 후에 병원 유튜브 편집자로 취업했다. 영상편집을 업으로 해보니 진짜 영상 편집이 나랑 잘 맞다는 생각이 들더라. 디자인과 영상편집은 사실 아예 따로 놓고 볼 수는 없다. 영상편집에도 디자인이 꽤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필수는 아니다.
처음엔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담당했고, 첫 직장(?)이라 속도는 느렸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케팅팀은 인원이 팀장님, 나 그리고 PD님 이렇게 셋이었다.
유튜브로 자리 잡은 병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입사 후 한 달 정도는 주 2~3회 촬영을 하면, 그 영상을 나눠서 편집하는 식으로 했었다. 원장님이 바빠 촬영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블로그 관리, 인스타 관리를 했다. 원장님이 유튜브 대본 쓰기가 벅차다며 회의를 통해 돌아가며 대본을 쓰기로 했었다. 그때, 내가 글쓰기 좋아한다는 한마디에 정신 차리고 보니 대본은 나만 쓰고 있더라.
사실 그것까지도 괜찮았다. 문제는 내가 쓴 대본의 촬영은 계속 딜레이 되고. 원장님 본인이 쓴 대본만 촬영했다는 것. 회의를 통해 몇 번이나 흐름을 놓치고 대본을 못 쓰게 되기 전에 촬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으나, 원장님은 우리가 말하는 흐름이 뭔지 물어보셨다. 통계적으로 증명하라고.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인걸? 대형 유튜버들이 찍은 영상을 비슷하게 만들자는 걸 어떻게 통계적으로 증명해야 하지? 몇 명의 유튜버가 동일 주제로 영상을 업로드했는지 보여드려야 했던 걸까?
퇴사 후 반년까진 해당 채널에 종종 들어가 봤으나 내가 퇴사 전 적은 대본을 그때까지도 촬영을 (다) 안 했더라.
버티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만두는 방법을 택했다. 이미 직무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고, 이 부분도 몇 번 말씀드렸으나 유튜브 채널이 자리 잡을 때까지(10만)는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결과적으로 내 대본은 자꾸 딜레이 되고 나는 대본과 함께 블로그에 1일 2포를 해야 했다. 내가 잘 아는 분야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의학적 지식이 없는 나에겐 퍽 힘든 작업이었다. 게다가 여기서 계속 일하게 된다면 영상편집이 아니라 글만 계속 쓰게 될 것 같았다. 그러려고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공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실업급여를 신청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도 마지막 직장 근무 개월 수가 6개월이 넘지 않아 전전직장의 이직확인서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남의 돈 벌기는 진짜 너무 힘든 영역인 것 같다. 그리고 이때쯤 되니까 집에서 찍은 낙인처럼 나는 한 곳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당장 일은 해야겠고 마음이 너무 급해서 4월 한 달 쉬고 5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1년 꽉 채워 퇴직금도 받고, 이번에는 꼭 조기재취업수당도 받아야지. 내년에 중기청 연장도 있으니까 1년은 꼭 채워야지. 5월부터 출근하세요. 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이었다. 10개월 뒤 당일해고 당할 줄은 꿈에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