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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가 선하지 않은 ‘선의의 거짓말’

아첨을 선의로 포장하는 그의 뻔뻔함

대부분의 성격장애는 치료가 어렵지만 특히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자신에 대해 과도한 애정과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상대가 자기애성 성격장애, 즉 나르시시스트임을 아는 것은 그의 말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 파악하게 하고, 그의 의도대로 휘둘리지 않게 나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D가 어떤 말을 할 때의 의도는 대부분 똑같다. D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을 향한 무한한 칭찬과 인정, 찬사 등이다.

솔직히 하고자만 하면 D와 같은 나르시시스트들의 마음에 드는 것은 쉽다. 대충 경청하는 척하다가 마무리로 무조건 ‘역시 대표님이시다, 정말 대단하다, 어딜 가도 이 회사만 한 곳은 없다, 늘 많이 배우고 있다, 진심으로 존경한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회사를 지켜달라’ 등의 반응을 하면 된다.

적당한 정도보다는 남들이 봤을 때 아첨에 찌든 간신배라고 느낄 정도로 과도한 게 좋고, 남들과 비교하며 추켜세우면 더 좋다. 그러면 D는 짐짓 과하다 핀잔하면서도 만면에 퍼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이 방법의 단점은 D 외의 모든 인간관계가 파탄날 수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D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이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들에게 타인은 이용 대상일 뿐이기 때문에 아무리 헌신해 봤자 필요할 땐 착취당하다 필요 없어지면 헌신짝처럼 팽당할 뿐이다.


그래도 적당한 아첨을 할 수 있다면 D와는 훨씬 원만한(D의 입장에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뻔뻔하게 할 수 있을 만큼 비위가 좋지 못하다. D의 말에 구겨지는 표정과 혀 끝까지 치고 나오는 반론을 억지로 누르며 침묵을 지키는 게 나의 최선이다.


반면 D는 타인을 이용하기 위해 거짓말을 서슴없이 하며, 그걸 당당하게 ‘처세술’이라고 포장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특별하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그들은 친구를 깊이 사귀는 것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이득에 의해서만 관계를 맺고 유지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외모, 능력, 성취, 조건 등에 대하여 우월감을 느끼기 때문에 높은 지위, 성공한 사람, 높은 성과를 내는 사람만이 자신과 급이 맞고 교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D가 사람을 평가하고 기억하는 기준은, 학벌, 사는 곳, 부모님의 직업, 외모, 옷이나 가방의 브랜드  등이다.


나는 지극히 속물적인 관심사들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속으로는 계산할지언정 겉으로 드러내는 건 참 사람이 천박하고 질 낮아 보이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D는 너무나 당당했다.

그리고 한술 더 떠, 그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자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그러한 노력을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일로 여긴다.


또한 D는 이용할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의 환심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다.

D는 회사나 직원들에게 들어오는 선물을 모아놓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할 일이 있을 때 쓴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돈을 아끼고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문제는 그걸 선물할 때 갖가지 거짓말을 덧붙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건 해외수출만 하고 국내판매는 안 하는 제품인데 ‘특별히’ 구해왔다든지, 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놓고 자신이 직접 재료를 공수해 정성껏 만든 수제품이라고 속이는 식이다.


D는 그것을 상대방을 더 만족시키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선의의 거짓말이라 함은 그 거짓말의 의도가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을 위할 때를 말한다. 하지만 D의 거짓말은 온전히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이 무엇이든 이득을 얻기 위함이니 그건 분명 ‘선의’가 아닌 그냥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D는 그 뻔뻔한 거짓말을 자신의 능력이라 자랑하며, 직원들에게도 본받으라 잘난 체한다.

D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법이나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D는 그 거짓말을 위해 그냥 가게에 주문해 포장배달을 시키면 될 것을 직원을 시켜 가게에 가 물건을 공수해 오고, 또 직원을 시켜 포장용기를 바꿔치기하고, 직접 방문배달까지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걸 배달하느라 무척 고생했다는 것을 또 강조하며 이야기한다. (물론 직원들의 수고는 안중에도 없다)

그냥 사서 준다 해도 충분히 마음씀만으로 고마워할 수 있는 것을 왜 필요이상의 거짓말을, 그것도 들키면 우스워질 거짓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모든 타인은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라고 믿어서, 자신의 거짓말도 다 통할 것이라 믿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품 이름만 검색해 봐도 국내판매가 되는지 안 되는지 뻔히 나오는 세상에서 자신의 거짓말이 다 통할 거라고 여기는 D의 믿음은 자신만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오만에 불과하다.


D는 가뭄에 콩 나듯 직원들에게 선물을 주는데, 그것도 다 어디선가 공짜로 얻은 것들이다. 물론 공짜로 얻었어도 신경 써주는 마음만 느껴진다면 충분히 감사할 일이나 D는 그걸 대단히 귀한 것인 양 온갖 생색을 다 내며 주기 때문에 조금도 받고 싶지가 않다. 주고도 욕먹는 재주를 갖고 있는 D이다.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솔직한 진심이라는 것을, 자신의 거짓말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선의마저 모두 퇴색되게 만든다는 것을 D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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