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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tysense Sep 25. 2020

고객만족, 만족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 식구를 차별하는 DNA에게

크건 작건 사기업이건 공기업이건 고객만족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겪은 우리나라 혹은 우리 회사 사람에게는 <남에게는 관대하지만 내 식구에게는 홀대>하는 DNA가 있다.


국제행사 중 만찬장 통역으로 배석한 적이 몇 번 있다. 행사장은 수도권에서 떨어진 지방이었고 나 외에도 콜을 받은 선·후배 열댓 명이 행사 몇 시간 전, 행사장에 집합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몇 번을 갈아타고도 택시를 타야 하는 복잡한 거리였기 때문에 집합시간에 늦을 것 같아 운전을 하고 가느라 행사 전부터 몸이 피로했다.


그렇게 옹기종기 식당에 모여 앉은 우리의 임무는 내·외빈이 모여 식사하는 오찬장에서 영어에 서툰 우리 회사 임원들의 대화를 도와드리는 것이다.


행사 중 식사는 당연히 하지 못한다. 통역하는 우리들은 밥 먹는 사람들 뒤에 앉아 그들이 식사 중에 나누는 대화에 영어가 장애가 되지 않도록 도와야하니 내·외빈들과 같이 밥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모양새가 참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식의 통역은 한두 번이 아니라 익숙하다.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모르니 잘 들 준비하라는 당부에 우리 회사 연혁, 외빈들 프로필을 머릿속에 넣었다. 여러 나라 분들이 모인 오찬 테이블에서 대화 주제가 없어 식사만 하신다면 그것만큼 시간낭비가 없으니, 말할 거리도 준비했다.


행사 30분 전, 말끔한 정장 차림의 모르는 사람이 행사장에 입장했다. 앳된 얼굴의 여자는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었고 회사에서 따로 섭외한 통역사였다. 그녀는 사회자 옆에 앉아 종이 한 장을 가방에서 꺼내 읽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었고 사회자가 우리말로 한 마디를 하면, 외부 통역사는 준비된 번역문을 읽었다. 굳이 돈 들여 외부 통역사를 섭외했는지 의아했다.


회사 소속원으로서 콜을 받은 우리는 행사 당일 지방으로 직접 운전해서 가느라 피로에 쌓인 채, 무슨 얘기가 오고 갈지 모르니 알아서 하라는 식의 임무를 받고는 순차 통역을 하느라 신경이 곤두섰고 내·외빈의 한 시간 반 식사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해 탈진상태였던 것에 반해 섭외한 통역사는 하루 전 우리 회사에서 제공한 호텔에서 숙면을 취했다고 했다. 심지어 미리 시나리오 대본을 받아 호텔에서 번역해 온 종이 한 장을 읽고 난 후 외빈 테이블에서 식사를 마치고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 회사는 내 식구를 차별 대우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경험은 부끄럽게도 수 없이 많다.


내가 사회를 볼 때도 우리말 대본을 미리 받은 적은 물론 있다. 한 번은, 전날 번역본을 준비했지만 그 행사를 주최하신 이사님은 행사가 시작되자 시나리오대로 하지 않겠다며 계획을 바꾸셨다.


'오늘 대표 통역이지? 영어 잘한다며? 내가 오늘 너를 시험할 거야.

대본받았지? 그런데 나는 그것대로 절대 안 할 거야. 한 번 잘해봐.'


이사님은 당신 마음대로 고사성어와 구전 명언을 섞어가며 멋들어진 말씀을 하셨고 당황한 내 통역은 그다지 멋들어지지 않았다.


당시에도 외부에서 섭외한 분께는 미리 준비한 대본을 주셨고 번역한 것 그대로를 읽도록 하셨다. 내가 트레이닝을 받을 시기도 아니었는데, 나에게 '내가 오늘 너를 시험할 거야.'라는 겁을 왜 주셨는지 진땀을 뺐다.


근사한 호텔에서의 숙박 제공이 탐났던 적은 없었다. 단지, 대우를 해 주기를 바랐다. 회사의 일을 멋들어지게 해 낼 수 있게, 회사를 대표하는 이의 멋들어진 말씀을 멋들어지게 전달할 수 있게, 그래서 우리 회사가 돋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어떠한 모진 상황에서도 내 실력이 모자라지 않았다면 나도 이사님 만큼이나 즉흥적으로 멋들어졌을 테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바깥사람보다 내 식구를 더 대우해야 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내가 열심히 일해 온 회사에서 일한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차별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 회사는 조직원으로부터 사명감, 소속감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건 도둑놈의 회사이다. 나도 이 일을 입사한 해부터 겪으면서 150프로였던 내 사명감은 한 단계 줄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나를 시험한다던 그 이사님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궁금하지 않다. 다만, 그곳에서는 바깥사람보다 당신 식구를 조금 더 챙기셨으면 한다.


집에서 나는 진짜 내 식구들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혹시나 내가 집에서, '너를 시험할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이사님이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만약 내가 그 이사님처럼 우리 집 식구들을 대했다면, 나는 왜 그랬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어떻게 대해도 나를 떠나지 않을 사람.'

'내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으름장을 놓아도 나를 받아줄 사람.'


이런 오만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 일방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내 식구들을 차별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식구, 내 새끼, 내 사람에게 잘해야 한다. 내부고객이 가장 큰 고객이며 외부고객 만족으로 이어지는 Origin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에게 '단념'한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것도 못하면서 고객만족을? 만족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순간 나는 그 사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잃었을지 모른다. 내가 우리 회사, 그 이사님 면전에 대고 하고 싶었던 말처럼.

"But, you've just lost me."

(그런데, 방금 저를 잃으셨어요.)


우리 집 식구들, 내 새끼들이 나에게 '방금 저를 잃으셨어요.'라는 말을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내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내 식구들, 내 새끼들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사회에서, 회사에서 모진 경험을 겪을수록 더더욱.

이렇게 내 삶의 우선순위는 회사에서 가족으로 바뀌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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