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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ortysense Oct 26. 2020

면접비는 바라지도 않았거든, 예의나 좀 갖추시지

"배가 불러서 그래."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충분한 월급, 만족할 만한 근무환경, 뛰어난 복지로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승무원이라는 직업. 승무원으로서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나는 즐겁지 않았고 열심히 일하지 않았고 회사에 만족하지 못했다.


"배가 불러서."


취업준비생일 때에는 어느 회사가 됐든, 그 회사가 어디에 있든 뽑아주기만 한다면 10시간을 서서 일하라고 해도 당연히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는데 합격과 불합격의 한 끝 차이로 '나'는 배가 부른 승무원이었다.


감사함을 간과했던 나의 그 시절. 반성해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나를 벌하는 것만 같다.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개념이 없는 외국회사, 에미레이츠 항공사는 매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한다. 최종 합격을 받은 우리 입사 동기들도 3년 계약서를 작성했다. 서울과 두바이 간 직항 편이 없어서 오사카를 거쳐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들은 서로의 계획을 물었다.

"언제까지 일하실 거예요?"


두바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녀들은 대부분 오래 할 계획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승무원을 할 생각은 없어요."

"1~2년 있다가 다른 직업으로 이직해야죠."

"경험 쌓아 더 좋은 곳으로 가야죠."

"어떻게 평생 외국에서 살아요. 한국에 곧 들어가야죠."


나의 계획은?


없었다.


두바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합격을 했고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는 순간이었다. 그저 나를 발견하고 인정해준 아랍 회사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 감사함은 '나'라는 나약한 인간에게서 잊혔다.


트레이닝 칼리지를 졸업하고 수습 비행을 마치고 승진을 하고 할 일없는 영국 비행에서는 동료의 호텔방에 모여 다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까다로운 승객을 만나면 기분이 안 좋았고 더 까다로운 동료를 만나면 기분이 더 안 좋았고 그저 나의 집, 두바이에 도착해 짐을 풀고 누울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 

즐겁지 않은 비행을 계속할 무렵, 이십 대의 중요한 시간을 외국에서 흘려보낸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으로 직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어학 교재를 발간하는 회사에 편집, 기획업무 담당 공고를 보고 연락했다. 채용이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되었을 시점에 면접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외국에 거주하고 있으니 면접 한 번 보러 오라는 연락은 나의 채용이 마무리되는 시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왕복 이틀을 소비해야 하고 승무원 할인 티켓이라고 해도 비행기 티켓은 비행기 티켓이고 근처 호텔도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채용 담당자와 몇 번의 영문 이메일을 주고받은 뒤 '영어 에세이는 내가 본 것 중 최고다. 찾고 있는 자리에 적합한 분을 만났다. 면접 일정을 잡을 테니 구체적인 것을 논의하자.'라는 최종 이메일을 받았다.


지하철 한 번 타고 면접에 다녀올 거리가 아니었기에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할인 티켓을 신청하고, 승객 예약이 적은 날짜를 골라 어렵게 서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도착한 그 회사에서는 채용 담당자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만난 사람 중에 나처럼 영작을 맛깔나게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며 같이 일하게 돼서 좋다고 했다. 단 한 가지, 연봉을 정해야 하는데 그 결정권자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남자 둘이 있는 회의실로 나를 데려갔다.


탁한 공기, 어두침침한 딱딱한 분위기.

불안한 기운이 엄습했다.


두 남자는 나에게 '아랍에서 온 승무원을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그 자리를 뽑으시는 분이 우리 회사에서 영어 제일 잘하시는 분인데 그분이 영어를 잘하신다고 하니 실력은 안 따져도 되겠다.'라고 했다.


기분이 나빴다가 좋았다가 이상했다. 하지만 까짓것 취직하면 그만이니 흘려들었다.


그러고는 두 남자는 덧붙였다.

'그런데 연봉을 요구하신 만큼은 못 맞춰드려요. 우리 회사 평균 지급 연봉이 있는데 처음 들어오시는 분에게는.'라며 끝을 흐렸다.


내가 원하지 않던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다. 채용 담당자라는 분과 연봉 범위를 정했다. 그 이하로는 고려하지 않고 있으니 면접 일정을 아예 잡지 말아 달라고 확실히 얘기했던 부분이다.


입장을 듣고 난 두 남자는, 

"에이 그걸로는 부족하고, 자 여기 우리 둘을 설득해봐요. 어디 한번 들어나 봅시다. 영어를 잘하니까 영어로 들어볼까? 아랍 영어?"라며 낄낄대기 시작했다. 내 실력을 검증해야 하는 것도 아닌, 숫자놀음에 이 먼 길을 날아왔나 싶어 자괴감도 들었다.


이미 나의 가치를 정해버린 곳에서 나를 낮추고 들어갈 필요 없다는 생각에도 끝까지 예의를 지키며 면접을 마치고 다음 날 나의 집, 두바이로 돌아왔다.


한 숨 늘어지게 잠을 청한 뒤 컴퓨터를 켜니 이메일이 와 있었다. 연봉을 조금 낮춰 입사해 달란다. 나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정중하게 답장을 하고 다시 누웠다.


내 시간과 비용이 아까웠다. 연봉 얼마를 깎는다고 해서 젊음이 가장 큰 자산이었던 당시의 나에게 영향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회사에 들어오고 싶으면 너를 낮춰라, 회사기준에 맞춰라, 싫음 말고, 는 식의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 낄낄대던 두 남자의 재수 없음에 두바이에 돌아와서도 계속 구린내가 났다.


면접비는 바라지도 않았거든, 예의나 좀 갖추시지.


'그 회사 채용담당은, 인사 결정권자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나는 답을 찾고 싶었다. 화가 있는대로난 나는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배가 불러서 그래."


앞에 앉은 나는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고, 내가 아니더라도 구직자는 차고도 넘쳤을 테니까. 취직하겠다고 비행기까지 타고 왔으니 내가 이 회사에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했겠지.


나는 그 회사 말고도 몇 군데 면접 일정을 받아 놓은 곳이 있었지만 한국에 가지 않았다. 이후 두바이에서 10시간을 날아 면접에 갔던 그 회사가 출판했거나 회사명이 들어간 그 어떤 책도 절대로 구입하지 않게 되었다.

채용, 인사권자들은 자신이 앉아있는 그 지위가 어마어마하다고 느껴질지 모른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솔직하게 진심으로 예의를 갖춰 대하길 바란다. 당신들도 과거의 언젠가, 미래의 언젠가 맞은편에 앉아있었거나 앉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이 일로, 감사하며 비행하지 않았던 승무원의 '이직 후 출국 계획'은 잠시 중단되었다.


나의, 한국으로의 출장 면접 소식에 한국 언니들 몇몇은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고 했다.


아마 그녀들도 취업준비생 시절의 마음과 달라진 마음에 나처럼 위기를 느꼈을 테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한 달을 어떻게 지냈는지 날짜 감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두바이에서 17일 밤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여덟 시간을 날아 도착한 곳은 여전히 17일 밤인 그런, 날짜가 무색한 승무원의 삶.

오늘은 뙤약볕에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었는데 내일은 두꺼운 패딩에 장갑을 끼고도 추워 어쩔 줄 모르는 곳에 서 있는, 계절을 거르는 승무원의 삶.

나는 이 모든 순간을 즐기지 않고 있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 모든 순간이 즐거웠을까.


내 앞에 주어진 순간이 감사하지 않아서, 즐겁지 않아서 그렇게 한국에 들어가고 싶었나 보다.


이 일을 겪고 깊은 실망감을 느꼈지만 곧 날짜가 무색한, 계절을 거르는 삶을 곧 받아들이고 살아냈다.


그리고, 에미레이츠가 나를 발견했듯이 나를 발견하고 채용할 한국 회사를 곧 만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나를 더 준비시키기로 결심했다.


다행인 것은 외국에도 집이 있고, 월급을 주는 회사가 있고, 나는 젊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비로소 감사함을 다시 느끼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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