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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애리 Sep 07. 2020

8970km를 날아간 옥수수수염차

05. 이탈리아 로마 1



“엄마, 어디 선보러 가? 앞머리 뽕이 너무 심한 것 아니야?”

“이상해? 처음 해보니까 잘 안 된다. 네가 좀 해줘 봐 봐.”  


오늘은 로마 시내 투어를 하기로 한 날.

엄마는 어제 남부 투어보다 오늘 로마 시내투어에 한껏 기대한 모양이다. 호텔 1층에서 조식을 먹고 방으로 올라와 엄마가 내 앞머리용 헤어롤로 이리저리 머리를 매만지는 모습을 보며 들뜬 엄마의 마음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오늘 시내 투어를 담당하기로 한 가이드는 김정미 여행사의 대표이자 딸 김정미. 시내투어는 여행사를 통해 따로 신청하지 않았다. 어젯밤, 자기 전에 구글 지도를 보며 호텔을 기준으로 오전 일정은 콜로세움-포로 로마노-팔라티노 언덕-진실의 입-대전차 경기장 순으로 동선을 짜보았다.


콜로세움을 만나기에 앞서 한껏 치장한 엄마와 나는 로마에서의 둘째 날을 신나게 시작해 본다.

호텔에서 콜로세움까지는 도보 15분 거리. 걸음이 빠른 엄마와 나는 넉넉하게 12분이면 도착할 것이다. 콜로세움 안에 들어가기 전, 어디서나 잘 보이는 콜로세움이지만 인증 사진을 제대로 남기기 위해 유명한 포토 존을 찾았다. 지하철역 콜로세움 역에서 나와 첫 번째로 보이는 레스토랑 앞 담벼락에 걸터앉으면 너도 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꺼내 볼 수 있는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다. 찰칵!  


“어머어머, 웬일이야. 여기 앉아봐 봐. 잡지 사진 같아.

“엄마, 거짓말 좀 하지 마. 어디 봐봐. 이건 좀 잘 나왔네.”


한참 엄마의 기분 좋은 거짓말에 속는 척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 깜짝이야!


누가 내 손목을 잡았다. 화들짝 놀라 옆을 보니 아주 예쁜 (나보다 10살은 어려 보이는) 이탈리아 미녀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건다. 얘 뭐래니.

이탈리아어로 친절히 설명해주는 것 같은데 당연히 나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여성이 다가와서 냉큼 엄마 손에 들고 있던 옥수수수염차 빼앗는 게 아닌가.



지금 여기 이탈리아 로마 한복판에서 옥수수수염차가 어떻게 엄마 손에 있게 됐는고 하니, 엄마는 한국을 떠나오기 전 캐리어에 짐을 쌀 때 제일 먼저 옥수수수염차와 삼다수를 한가득 챙겨 넣었다.  


“엄마, 이탈리아에도 물 팔아.”

“물 사 먹는 거 아깝기도 하고, 맛이 다를까 봐. 내가 마실 물은 내가 알아서 챙겨갈게.”


생수마다 물 맛이 다른 건 인정한다. 제주도에 살면서 삼다수만 마시는 엄마인데, 전 세계 생수의 순위 맞히기라도 해야 하나. 과연 엄마는 삼다수를 구별할 수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4,5성급 호텔로만 예약했건만 여행 중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생수가 없을 것을 대비하여 엄마는 아침에 약을 챙겨 먹기 위해 물은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자신의 캐리어 안에 삼다수와 옥수수수염차를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옥수수수염차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엄마의 손에 들려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에서 무려 8,970km를 날아온 엄마의 옥수수수염차를 빼앗은 그녀는 재빨리 엄마의 손에 시원한 탄산음료를 쥐어준다.

‘응?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지?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신종 사기 수법인가? 일단 뚜껑을 따고 마시게 한 뒤 돈을 내라고 하는 건가?’

나는 재빨리 빼앗긴 옥수수수염차를 다시 빼앗아오며 아주 크게 말했다.


“노! (No!)” 


미안하지만 필요 없다고 하고선 엄마의 손을 잡고 돌아서는데, 딱 한마디가 귓가에 꽂혔다.


“이츠 프리! (It's Free)”  


공짜라니. 로마 한복판에서 왜 음료수가 공짜인 말인가.

알고 보니 그녀들은 새로 출시되는 라임맛 탄산음료를 홍보하고 있었는데, 나는 미처 뒤에 있던 홍보 매대는 보지 못한 채 그녀들의 얼굴만 보고 오해부터 하고 본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5월 햇살에 맨도롱 해진(따뜻해진) 엄마의 옥수수수염차를 시원한 음료로 바꿔주겠다는 제스처를 했을 것이다. 이미 길거리에는 우리뿐만이 아니라 이 길을 오고 가는 다른 여행객들의 손에도 시원한 음료가 들려있었다.


“미안해요. 당신들이 너무 예뻐서 제가 오해를 했네요.” 

 

 ‘고맙다, 예쁘다’라는 인사를 수차례 건네고 우리는 진짜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상치 못한 만남에 기분이 좋아졌다.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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