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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애리 Sep 10. 2020

내가 핸드폰을 바꾸는 이유

06. 이탈리아 로마 2

   



“저 사람들 전부 콜로세움 보러 온 거야? 우리도 빨리 나온다고 나왔는데 언제부터 줄을 섰을까?”      


콜로세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생각보다 웅장한 규모에 놀라고 입장권을 사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또 한 번 놀란 듯 보였다.   

이탈리아 여행하면 로마요, 로마 하면 콜로세움이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겠지만, 그보다 나에게 콜로세움은 엄마가 홈쇼핑을 시청하다가 가보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 보낸 첫 번째 장소라 한국에서부터 신경이 쓰였다.

그리하여 나는 <5월 성수기에 입장권을 사기 위한 줄은 서지 않는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여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콜로세움 통합권을 미리 예매해두기로 결정했다.

콜로세움 통합권은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그리고 팔라티노 언덕을 모두 입장할 수 있는 통합 티켓으로, 온라인으로 예약 시에 수수료 2유로가 추가되지만 빠른 줄로 입장할 수 있어서 긴 줄을 서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너 새치기하지 마. 누가 보면 국제적 망신이야.”

“엄마, 난 줄 안 서.”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 선 사람들 옆으로 들어가 보니 패스트트랙 입구가 보인다.

미리 인쇄해온 종이 통합권 티켓에 인쇄된 바코드를 찍고 통과하니 어느새 우리는 콜로세움 내부에 들어와 있다.  


“미리 한국에서 예매하고 왔지. 언제 기다려서, 언제 티켓 사고, 언제 구경할래?”

“역시, 우리 딸. 이럴 때 보면 똑똑하다니까.”

“아까는 새치기하지 말라며?”


엄마는 내 말은 귓등으로 듣지도 않은 채 씩씩하게 돌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간다.

아! 엄마가 이렇게 큰 유적지를 본 적이 있던가. 콜로세움 2층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눈앞에 펼쳐진 콜로세움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한 듯이 조심스럽게 한 자국씩 내딛는다. 좀처럼 놀라지 않는 엄마의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다.

콜로세움 내부

엄마는 제주도에서 살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을 짧게 여행 다녀온 것뿐, 유럽은 처음이다. 강원도나 부산, 심지어 수학여행의 핵심인 경주조차도 제주도에서 사는 엄마에게는 너무나 먼 곳이었다.

아빠가 계실 적에도 엄마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지만, 아빠의 부재 이후 엄마는 자식들은 비싼 옷을 입히고 좋은 것만 먹이며 당신은 흔한 금반지 하나 없이, 아니 만 원짜리 티셔츠 한 장 새로 사는 법 없이 우리만 바라보고 열심히 사셨을 것이다.

엄마 말에 의하면, 제주도 촌년이 이탈리아 로마까지 와서 콜로세움을 와봤으니 출세했단다.  

왜 진작 엄마랑 이 넓은 세계 속으로 함께 오지 않았을까. 세상은 이토록 넓은데, 제주도라는 우물에 갇혀 60 평생을 사셨을 엄마에게 미안함이 든다. 나 혼자 유럽 여행은 겁도 없이 잘 다니면서 엄마를 모셔올 생각은 환갑 기념이라는 명칭을 달고나서야 생각해냈으니 아무래도 엄마는 딸을 허투루 키웠나 보다.  



콜로세움은 이탈리아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한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물로, 검투사 경기나 서커스 관람 등을 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원형극장이다.  

매우 효율적으로 지어져, 5만 명에서 최대 7만 명까지 대규모 인원을 수용하는 경기장임에도 불구하고 각층, 각 구역 별로 입장과 퇴장하는 게이트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 30분 내외로 관람객 전원이 입장 및 퇴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 인기가수의 콘서트라도 관람하게 될 때면 입퇴장 시 관객이 몰려 아비규환 될 때가 많은데, 새삼 고대 로마인들의 지혜와 기술력에 감탄하게 된다.  


“엄마, 콜로세움 뜻이 뭔지 알아? ‘거대하다’라는 뜻 이래.”

“엄마, 여기는 원형 경기장인데 검투사들이 대결하거나 공연하는 곳으로 쓰였대.”  

“엄마, 서울에 있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랑 규모 비슷하지? 최대 7만 명이나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하니까 엄청 넓지?”

“대단하다. 그런데 벌써부터 더운 것 같아. 아무래도 모자를 써야겠어.”      


오늘의 가이드가 미덥지가 않은지 대답이 시원치 않다. 인터넷에서 커닝한 설명은 한 줌 조차 안 되는 먼지가 되어 로마 하늘 어딘가로 사라진다.

나는 가이드로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고 딸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아침부터 헤어롤을 한 보람도 없이 모자를 써버린 엄마의 뒷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둔다. 엄마는 동영상 촬영이 낯선지 자꾸 카메라를 의식하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흔든다.  

콜로세움 외부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핸드폰을 새로 샀다.

나는 또래들보다 어린 시절 사진과 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많다. 다른 친구들도 나만큼 사진첩이 많은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에는 아빠가 안 보인다. 아빠는 항상 카메라 뒤에서 엄마와 나 그리고 여동생남동생을 찍어줬을 것이다.  

주변에서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신 분들이 하는 말 중에 이 말이 가장 가슴에 남았다.  


부모님 동영상 많이 찍어놓으세요.
사진은 보면 되는데,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빠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고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진다. 아빠가 나온 사진도 몇 장 없는데 동영상이라고 찍어놨겠는가.

그러다 이번에는 평생 우리들 곁에서 함께 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엄마의 폐암 선고에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행을 시작하면서 다른 것 보다 엄마의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찍어놔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아주 나중에 찾아보게 되었을 때 사진이 좀 더 선명했으면, 동영상이 좀 더 길게 저장됐으면, 좀 더 많은 양을 저장할 수 있었으면... 이렇게 좀 더 좀 더 하면서 욕심내다 보니 핸드폰을 최신 기종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콜로세움 앞에서 감탄하는 엄마의 모습을 전부 다 기억할 수 없을 테니까...

엄마의 상기된 목소리도, 엄마의 들뜬 발걸음도, 엄마가 아침에 헤어롤로 완성한 70년대 헤어스타일도 전부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지금 찍는 이 사진과 동영상이 보고 싶은 순간이 분명 생길 것이다. 그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수십 장의 사진과 여러 개의 동영상을 남기고 우리는 콜로세움을 나왔다.

엄마는 분명 초행길 이건만, 나보다 먼저 팔라티노 언덕을 찾아 앞장선다.

팔라티노 언덕에 도착하자 어디선가 들리는 음악소리와 무지개 색으로 날리는 비눗방울이 어우러져 마치 여기가 영화 <라라 랜드> 촬영장인가 싶은 착각이 든다. 귀여운 아기가 비눗방울을 따라 뛰어가고 벤치에는 노부부가 웃으며 대화를 하고 있으며, 이름 모를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춘다.

'이거 몰래카메라는 아니겠지? 저 기둥 뒤에서 이경규 아저씨가 짠 하고 나오는 거면 난 진짜 작가 그만둬야지.' 눈 앞에 펼쳐진 영화 같은 장면 때문에 애꿎게도 20년도 더 지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까지 소환시킨다.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서니 언덕 아래로 넓게 펼쳐지는 포로 로마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포로 로마노


“옛날에는 지금처럼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을 텐데 로마 사람들은 이렇게 크고 넓은 신전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햇살이 점점 뜨거워지는데, 씩씩하게 걸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만약 고대 로마시대에 우리가 살았더라면 엄마는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로마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했던가. 발길 따라 걷다 보니 진실의 입에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이 보인다.

진실의 입은 성당 입구 벽면에 위치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가면 조각상으로 지름 1.5m, 무게는 무려 1300kg이나 된다. 현재까지 정확한 용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진실의 입이라는 명칭은 중세 시대부터 '거짓말을 한 자는 이 조각의 입에 손을 넣어서 잘려도 좋다'라는 서약을 한 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

“엄마, 여기가 진실의 입이야.”

“이게 뭔데?”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여기에 손 넣으려다가 남자 주인공 손이 잘린 줄 알고 놀란 표정을 짓잖아.”


“오드리 햇반?”  


까짓 오드리 헵번 좀 모르면 어떠랴. 여기가 로마이고 엄마와 내가 여기 있는데.

엄마에게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손이 잘린다고 설명하니 제법 오드리 헵번과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자, 엄마 찍는다.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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