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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애리 Sep 14. 2020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07. 이탈리아 로마 3



제주도에는 올레길이 있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을 뜻하며, 통상 큰길에서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말한다.  

제주도의 걷기 좋은 길들을 선정하여 개발한 도보여행 코스를 제주올레길이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구경할 것 하나 없는 그야말로 남의 집 골목, 집 앞을 왜 걸으려고 하는 거지?’     


호텔에서 나와 트레비 분수로 가는 길, 로마 골목골목마다 구경하는 일은 재밌다.  

창문에 걸린 빨래도, 테라스에서 신문을 보거나 기타를 치는 사람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대문도 멋지다. 아, 로마에도 올레길이 있고 나는 지금 그야말로 남의 집 골목, 집 앞을 걸어가고 있다.

‘남의 집 골목, 집 앞은 구경할 것 하나 없다’라는 나의 지론이 새삼 잘못됐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제주도

“우리 시간 괜찮으면 저기 구경하고 가도 돼?”


사실 시간이 안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돈보다 시간이 많은 여행객이다.     

트레비 분수로 가는 어느 작은 골목에 작은 마켓이 열렸다. 그래 봐야 작은 천막 10개 남짓이지만 엄마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시장 구경에 나선다.

한국에서는 과일 잘 먹지 않는데, 외국에서 보는 과일은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걸까.

제일 마지막 천막 앞에서 엄마가 우뚝 선다.


ALL 10 EURO


“이거 전부 10유로라는 말 맞지?” 


테이블 위에는 사이즈 별로 다양 각색 신발이 쌓여있고 우리 외에도 손님들이 신발을 자유롭게 신어보고 있었다. 나는 과연 이 신발들이 10유로가 맞나 의심스러워서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확인해본다. (심지어 메이드 인 이탈리아라고 써져 있다.)


“여기에 있는 신발 전부 10유로 맞나요?”

“그럼요.”

“엄마, 10유로 맞대. 골라봐.”


엄마의 눈이 반짝인다. 엄마의 신발 사이즈는 235. 유럽 사이즈는 36.5가 맞을 것이다.    

엄마는 큐빅이 박혀있는 운동화를 집더니 냉큼 발부터 욱여넣는다. 


“엄마, 누가 봐도 사이즈 작아 보이지 않아? 사이즈부터 확인해야지.”

“네가 엄마 사이즈 좀 찾아줘.”


나는 같은 디자인의 36.5 사이즈를 찾아내 신데렐라 동화책 속의 왕자님처럼 무릎을 꿇고 운동화 끈을 풀어 엄마의 발에 신겨본다. 딱 맞는다.


“이거 사고 가도 돼? 캐리어에 짐 되면 안사고...”


캐리어에는 딸년이 사둔 세상 쓸데없는 로마 스노우볼이 들어있다. 게다가 뽁뽁이로 얼마나 감쌌는지 25m 옥상에서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고 거대하게 포장되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0유로짜리 신발 한 켤레 사면서 딸 눈치 보는 엄마라니... 아직 대답하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재빨리 말을 보탠다.      


“캐리어 안에 넣을 곳 없으면 내가 보조가방에 들고 다닐게.”


아니 어머니, 이미 계산까지 끝낸 딸을 왜 불효녀로 만드시나요. 신발 한 켤레쯤이야 캐리어에 없는 자리도 만들어드려야지요.  

신발 상자는 쿨 하게 필요 없다고 하고선 하얀 비닐봉지에 신발 한 켤레를 들고 걸어가는 엄마의 발걸음이 구름 위를 걷는 듯 가볍다.

트레비 분수

1년 반전 여동생과 추위를 떨며 찾아왔던 트레비 분수는 한창 보수 공사 시즌이라 대형 공사판만 보고 돌아갔었는데, 보수를 끝낸 트레비 분수는 엄청난 위풍을 뽐내고 있었다.  

트레비 분수는 바로크 양식의 분수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수이자 콜로세움과 함께 로마의 대표 명소이다. 이 곳에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한다는 속설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고 있 모습을 볼 수 있다.


“엄마, 트레비 분수에서는 동전을 던져봐야지!”


대다수의 사람들 중에 우리도 포함이다. 동전 하나를 꺼내 엄마에게 쥐어준다. 가장 작은 단위의 동전을 건네면서도 막상 없어지는 돈이라고 생각하니 아깝게 느껴진다.

트레비 분수 앞은 소매치기의 집합소로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나는 잔뜩 예민해져서 경계를 살피며 누구 하나 다가오면 셀카 봉으로 칠 기세로 엄마의 사진을 찍는다. 엄마 역시 기 있는 모든 여행객들이 소매치기처럼 느껴졌는지 신발이 담긴 비닐봉지를 소중히 고 동전을 던진다. 아무도 우리 모녀를 신경 쓰지 않았겠지만 한껏 긴장했더니 얼굴이 돌하르방처럼 경직되었다. 굳이 여기서 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여행객의 기분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엄마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서둘러 트레비 분수를 빠져나와 판테온으로 이동했다.   



아마추어 가이드가 활약할 시간이다. 메모장에 저장해둔 얕은 지식을 뽐내기 시작한다. 


“엄마, 여기가 판테온이야. 그리스어로  ‘모든’을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쳐진 거래.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 오케이?" 

“응.”

“입구에 저 기둥들 보이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건데  총 16개 기둥이래. 옛날에는 신전으로 사용되다가 요즘엔 성당으로 사용되고 있나 봐. 내부에는 창문 없이 천장에 엄청 큰 구멍 하나로 채광이 들어온다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봐보자, 엄마. 천장이 뚫려 있는데도 비가 안 들어온대.”

“그래?”

“잠시만, 화가 라파엘로 이름 들어봤지? 여기 어디에 무덤이 있는데... 저깄다! 엄마, 내 말 듣고 있어?”

“우리 잠깐 앉았다 가자.”


엄마는 판테온 내부에 마련된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하얀 비닐봉지에 담긴 신발을 슬쩍 꺼내본다. 어린이날 새 운동화를 선물 받은 아이처럼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은가보다. 


“동생한테 운동화 사진 찍어서 보내봐. 뭐라고 하는지.”

“아니 무슨, 별로라고 하면 환불할 것도 아니면서.


동생아, 너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답장한 동생의 문자메시지를 읽어준다.


“예쁜 거 잘 샀대.

“그래? 그냥 제일 위에 있길래 고른 건데, 역시 잘 산거 같아.”

“나도 그중에 이게 제일 예뻤어.


'누가 보면 운동화 처음 사는 줄 알겠네.' 

딸내미들이 계절마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새 신발을 사드린 것 같은데 엄마는 로마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고른 운동화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방금 우리가 트레비 분수를 지나왔는지 말았는지, 판테온 뭐하는 곳인지도 관심 없는 것 같지만 나는 괜찮다. 이유가 어떻든 엄마가 기뻐하니까 그걸로 됐지 뭐.    

판테온 천장과 새 운동화


판테온에서 나와 영화 <로마의 휴일>의 대표적인 촬영 장소인 스페인 광장으로 향한다.


“딸~ 여기는 로마인데 왜 이름이 스페인 광장이야?”


역시, 이 질문이 나올 줄 알았지. 메모장을 보며 미리 검색한 내용을 읽어준다.  


“이 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서 스페인 광장이라고 부르는 거래. 엄마, 여기서 젤라토 하나 먹을까?”

“아니, 나 이 꽃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줘.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가이드이자 사진사인 딸은 재빨리 요리조리 포즈를 취하는 엄마의 사진을 찍는다.

스페인 광장에서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로 이어지는 스페인 계단이 있는데, 이 계단에 앉아 오드리 헵번처럼 젤라토를 먹어야 이곳에서의 촬영이 완성되지만, 엄마는 젤라토 보다 꽃이 좋단다.

5월의 로마 하늘과 예쁘게 핀 꽃들이 어우러져 마치 여의도 벚꽃축제에 온 기분이다. 어디에선가 장범준의 '벚꽃엔딩' 가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스페인 광장 분수 앞에서 닭꼬치나 솜사탕 파는 리어카만 있으면 딱인데, 아쉽다.

스페인 광장

스페인 광장을 끝으로 엄마를 위한 일일 로마 시내 투어가 종료되었다.


"엄마. 로마 시내 관광은 여기까지. 어땠어?"

"100점이야. 남부 투어보다 훨씬 좋다."

"신발을 사서 그런 건 아니고?" 


어머니... 왜 아니라고 대답을 안 해요.

로마 시내투어는 종료됐지만 엄마와 나는 호텔이 아닌 테르미니역 방향으로 걸어간다.


아직 가이드에게는 마지막 히든카드가 남아있습니다요!


로마 하면 젤라토! 젤라토 하면 로마가 아닌가!

테르미니역 앞에는 로마의 3대 젤라토 맛집 중 가장 유명한 ‘파씨(G.FASSI)’라는 가게가 있다. 1880년부터 시작해 무려 100년이 넘은 가게로 3가지 맛을 골라도 2유로다. 먼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보여주면 원하는 맛을 고를 수 있으며, 마지막에 생크림을 올릴 건지 물어보면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안녕하세요. 쌀 맛있어! 리조 베리 굿” 


얼마나 많은 한국 관광객이 왔다 갔는지 점원은 친절하게 한국어로 인사를 하며 가장 대표적인 쌀(리조) 맛 젤라토를 소개해주었다. 엄마는 이탈리아와 영어로 메뉴가 써졌지만 과일 그림으로 맛을 유추하며 진열대에서 한참을 고르더니 가장 유명한 ‘쌀(리조)’과  ‘피스타치오’와 ‘멜론’ 맛을 선택한다.


“아까 스페인 광장에서 오드리 헵번처럼 먹어야 했는데, 맛이 어때. 엄마?”

“한국에서 먹는 아이스크림하고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역시 쌀 맛이 맛있.”


역시, 로마에서 젤라토 실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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