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남편도 안정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나도 남편 학비 낸다고 투잡 쓰리잡 하면서 일을 하다 보니 경력이 더 많이 쌓여서 더 좋은 포지션도 얻고.. 자연스레 두 사람 다 수입도 늘어서 생활도 안정되기 시작했다.
대출을 아주 많이 받긴 했지만 집도 샀다. 중심가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고, 인테리어도 예쁜 이층 집이었다.
그 과정에 힘든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큰 사건 없이 모든 게 수월하게 잘 풀렸다. 일이 바쁘지만 여행도 가끔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시댁에도 1년에 한 번쯤은 찾아가고, 한국 친정에도 가끔 가고…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2020년 말… 남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원래 아주 밝고 사교적인 사람인데 기분이 다운될 때가 많아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먹는 양도 줄었고, 말수도 없어졌고,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아도 피곤해할 때가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줄었을 때라 처음에는 그 변화를 잘 느끼지 못했는데, 가끔 마음이 불안하다 기분이 가라앉는다 이런 이야기를 해서 나도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어쩔 때는 좀 나아지기도 하다가, 또다시 가라앉기도 하고 그게 3개월, 4개월이 지나도 바뀌지가 않았다. 조금씩 상태가 악화되는 게 눈에 보여서, 그가 정말로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출근을 앞둔 남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저히 출근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회사 가도 아무것도 못할 거 같고 그냥 모든 게 너무 두렵고, 심지어 회사에 못 간다는 연락도 못하겠다고 하길래, 결국 내가 회사에 연락하고 그날은 쉬었다.
올 게 왔구나 싶어서 그날 나도 휴가를 내고, 최대한 빨리 초진을 받아주는 정신과 병원을 찾아보고 예약해서 갔다. 다행히 휴가를 둘 다 며칠 낼 수가 있어서, 예약날짜까지는 조금 쉬면서 기다릴 수가 있었다.
우리가 간 병원의 의사는 나이가 좀 있어 보였는데, 남편이 이 나라 말을 아주 잘하지는 못해서 내가 통역을 하면서 진료를 봤다.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한 끝에, 일단 의사는 적응장애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항우울제를 처방해 줄 테니 먹어보라고 하길래, 약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항우울제의 약효가 나오는 데는 적어도 2주쯤 걸리니,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약도 처방받으니 이제 해결의 가능성이 보인다고 생각해서 뭔가 좀 마음이 편했는지, 남편은 조금 밝아져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는 상태가 괜찮아져서 평소대로 출근을 했다.
남편의 상태가 좋아진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인데, 나는 왠지 불안했다. 분명히 항우울제의 약효는 2주쯤 있어야 나온다고 했는데, 남편은 병원에 다녀온 직후부터 나아진 것처럼 보였고 하루 이틀 지나고 나서는 예전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람에 따라 항우울제의 약효가 빨리 나오는 사람도 있나? 아니면 우울증이 아니었나? 그러기에는 서너 달이나 상태가 안 좋았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래서 남편의 변화에 조금은 안심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