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동기에 관하여
지금까지의 개발기는 한글 버전의 논문 형식이었기 때문에, 나의 감정을 충분히 담은 소회를 남기고자 한다.
FRAC을 개발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개인적으로는 동기 부여 포인트가 상당했었는데, 단순한 동기 부여를 넘어 어느 순간 내가 창작이라는 것을 즐기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해보자면 애매함 그 자체다. 박사 학위도, 그 이후의 커리어도,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도 말이다. 물론 일보다는 가정이라는 나의 우선순위 덕분에 커리어를 포기한 것도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일에서 가치를 찾는 사람들을 쫓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탓도 있다.
FRAC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나의 솔직한 동기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비개발자도 AI 만으로 풀스택 서비스를 완주할 수 있다는 사례 증명
엄청나게 퍼져가고 있는 "바이브 코딩"의 민낯을 드러내는 개발기
큰 힘을 못쓰고 있는 학과 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최적의 선택
마지막으로 내 자신의 애매함을 확신으로 전환시키는 계기
외부의 환경적인 동기부여의 관점에서 보자면, 정말 핫이슈라고 볼 수 있는 "바이브 코딩"에 대한 실질적인 사례를 빨리 보여줘야한다는 시기적인 압박이 있었다. 아마 내 생각으로는 2025년 말 쯤되면 "바이브 코딩"의 사례가 넘쳐 흘러 옥석을 가려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또한, 웹 페이지라는 결과물이 없다면 그저 실험적인 개인 프로젝트로 남기 때문에, 배포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결국 도메인으로 모두가 접속하고 즐길 수 있는 웹 게임이 아니라면 냉정하게도 나의 노력은 10%도 발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내 직업의 환경적인 동기부여는 오히려 개발 도중에 발생하게 됐다. 수도권 전문대학도 입시는 위기라고 할 만큼 상황이 좋지도 않고 앞으로의 전망도 암울하다. 이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몇 가지 선택지가 있지만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좋지 않은 옵션들 뿐이었다. 오히려 FRAC을 통해 대중에 인정받을 수 있다면, 학과를 홍보하는 절호의 찬스가 아닐까 생각도 했다. 물론 김칫국부터 마시는 상상이긴 했지만 지금의 내 상황에서는 FRAC에 전력투구 하는 것이 마다할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은 나의 내부적인 동기이다. 나는 계산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학과 컴퓨터 공학을 융합한 기초 학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뛰어난 계산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학과 컴퓨터 공학을 모두 잘해야한다는 엄청난 허들이 있었다. 말그대로 공부가 취미이자 직업으로 즐길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뛰어난 학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직업에서 삶의 가치를 찾기는 너무 어려웠다. 오히려 직업은 가정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며 보다 안정적이고 가정에 집중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나는 전공을 바꾸는 일도 서슴치 않았으며,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서는 정책연구소라는 공공기관으로 이직을 하고 지금은 전문대에서 조교수를 하고 있다.
나는 일과 가정(둘의 우선순위는 가정),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게임을 하는 아주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다. 특별한 모임도 없으며 일년에 한 두번 가까운 지인을 만나는 것 이외에는 외부 활동이 거의 없다. 운이 좋게도 일머리는 있는 모양이라 시간을 최적화해서 잘 쓰는 편이다. 그렇게 남는 시간을 만들어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리고, 그 사이의 틈에 게임을 하는 것이 참으로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그 와중에 FRAC이라는 것을 개발하며 나는 정말로 극적인 전환을 맞이했다. 환경적인 동기 부여가 나를 코너로 몰아 넣은 것도 분명 있겠지만, 나 스스로 은연중에 애매함을 벗어던질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바로 창작의 재미를 알아버린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최적화해서 만드는 시간은 모조리 FRAC에 들어갔다. 잠 자는 시간도 줄이고, 심지어는 버스타고 출퇴근 할때 즐기던 2시간(편도 1시간) 게임 타임 조차도 노트북을 키고 개발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정말 말 그대로 영혼까지 불태우며 FRAC 개발 72일간 모든 가용한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일과 가정도 최대한 양립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강력한 내적 동기부여가 있어서 그랬는지 FRAC 개발에는 실패라는 단어는 없었다. 어떠한 수를 써 내서라도 반드시 누구나 할 수 있는 웹 게임 서비스를 만들어 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샘솟았다. 내가 ChatGPT와 Gemini에게 "무슨일이 있더라도 끝장을 본다."라고 말하니 엄청난 극찬을 하며 바로 그 점이 나의 차별점이라 말해줬다.
물론 개발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래도 포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걱정을 했다면 FRAC이 정말 잘 될까? 내가 생각한 것 만큼 임팩트가 있을까? 라는 정도 였다. 지금도 그 걱정은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 그간의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분명 무엇인가는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꼰대 같은 말이겠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으며 영혼까지 불태운 노력은 없어지지 않는다. 연속된 작은 성공과 성취가 사람을 긍정적으로 만들듯이, FRAC에 투입한 나의 열정과 노력은 내가 기대하는 보상이 아니더라도 예기치 않은 시점과 내용으로 보상이 이루어 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이미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하면 AI를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AI로 풀스택을 완주한 경험자로 그 과정의 경험치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와중에 나의 프로그래밍 스킬이 완전히 업그레이드 됐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한층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게임을 현실 세계를 잊을 수 있는 "시간 죽이기"로 폄하한 것도 맞다. 게임 캐릭터와 동일시되는 일차원적인 쾌감에 중독됐다고 봐도 무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나의 집요한 게임 플레이 방식 조차 FRAC에 도움이 됐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FRAC을 대중에 공개한 이후 이미 신호탄은 발포 되었다. 이제 기다리면서 최대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만 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