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중반, 그 혼돈의 시절에 푸른 젊음의 시간을 가졌던 나는 대학이란 곳에서 가숙하였다. 적당한 잠과 식사를 대부분 캠퍼스 안에서 해결하며 지냈으니, 그때도 지금도, ‘가숙’이란 말 이외에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힘들다. 어쨌든 젊음의 거친 혼돈만큼이나 사회적 혼동이 컸던 그 시절, 곤궁한 한 젊은이에게 대학이란 반쯤은 삶의 터전 삼고 반쯤은 도피처로 삼기에 그럭저럭 좋은 곳이었다.
그래야만 하는 이슈는 지천에 늘려있었고 수업 거부와 가두 투쟁이 일상화되었다. 더 이상 붙일 곳이 없을 만큼 넘쳐 나는 대자보와 대자보를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읽다가 보면 약속시간 따위는 깜빡하기 일쑤였다. 그 시절의 대학생에게 이념과 이데올로기는 젊음의 의무였고 특권이었다.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에도 통기타에 일렉 기타 튕기고, 전공서적보단 문학서적의 무게를 견뎌야만 했던 늘어진 천가방은, 스물이란 숫자를 주홍빛 글씨로 가슴에 새긴 은회색 겨울 같은 방황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눈앞에 아른거렸던 문은 연초록이거나 파랑이을까.
스물, 3학년이었던 1987년 육이구 선언이란 게 터져 나왔고, 긴 투쟁에 비해 너무 허무하게 종지부를 찍은 대통령 직선제 선거 결과는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환멸만을 남긴 채 캠퍼스에 칩거하게 만들었다.
그 시절은 각종 사상서적과 이데올로기, 음악과 담배연기와 알코올이 뒤엉킨 젊음을 아무런 편견이나 별다른 채색 없이도 대학이라는 상아탑을 대변하는 파란 하늘빛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어둠이 살짝 내려앉은 비 오는 날의 풍경과도 같은 그 기억 속 가장자리에는 <새>라는 제목이 달려 있는 노래가 있다. 저녁 무렵, 일찍부터 벌어진 술판에서 25 퍼센트의 알코올이 어우러진 소주의 쓴맛을 새우깡의 짭조름함이 잡아줄 때면, 눈가에 어른거리는 물기를 훔치며 <새>를 불렀다. 그 물기는 가사가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젊었기 때문에, 젊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울컥해져 버리는 책임 없는 가슴이 흘리는 눈물이었다.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의 치열한 충돌은 꼭 합리적인 해명과 이해를 구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시절의 나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게 바로 나였다. 어떤 사건은 애써 부정하지 않고 그냥 두게 되면 살이 붙은 긍정이 되어 전설이 되거나 진리가 된다. 진실이란 게 또 다른 삶의 변명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진리를 말하는 자의 가슴은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고 믿고 싶은 법이다.
<새>라는 노래는 당시에는 누가 불렀는지도 몰랐던 곡이다. 사실 데모가 생활처럼 변질된 그때에 이 곡은 가두 출정을 앞두고 모여 있던 대학생들이 자신과 동료들을 독려하며 부르던 데모곡이었다.
이젠 안치환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이 곡, 그 당시에는 금지곡이었던 이 곡, 금기의 봉인이 해제된 <새>는 더 이상 특별했던 그 시절의 특별했던 그 곡일 수는 없다. 숨어 부르던 그 시절의 <새>가 문 닫힌 비밀의 정원처럼 그리워진다. 비밀의 정원에는 문이 꼭 닫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무언가 비밀스러운 것이 그 안에 있을 것만 같다. 훔쳐보는 것이 더 관능적이기 마련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몇번이나 지나왔지만 아직도 가사가 너무 잘 들리고 귀를 통해 가슴까지 금세 전달된다.
세월이 아파진다. 다신 생목으로 제대로 부르지 못할 것 같은 곡이다. 며칠이 가도 씻겨 내려가지 않고, 캠퍼스 곳곳에 흩어져 날고 있던 하얀 최루탄 가루에 매캐해진 목젖이 떨려야만 제대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곡이다.
가사처럼 ‘더운 여름날 썩은 피 흐르던’ 캠퍼스를 떠난 젊음은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새>를 부르며, 싸늘한 밤하늘을 눈시울 연붉게 적시던 연푸른 이십 대의 젊은 내가 눈물 나도록 그립다
스물의 회상
모서리 헤어진 책들이
가슴팍까지 쌓여 있던 퀴퀴한 골방에,
도시 하천에 내린 밤안개 같이
무겁게 깔린 담배 냄새와
발 냄새, 그리고 인간 남자의 냄새
삼양라면 한 봉지를
물 적게 넣은 양은 냄비에 끓여
짭조름한 MSG 맛을
안주 삼고 해장 삼던
25도의 진한 소주
그 싱그러운 잿빛 굴에 서식하면서
자유롭게 고뇌하고 아파하던
그 젊음이 아스라하다
추천곡이랄까, 팔십 년대 음악다방의 용어로는 리퀘스트라 할까. 작은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 본다.
"먼저, 부르는 사람 미상의 곡 <새>를 부탁합니다. 가능하시다면 바로 이어서 로드 스튜어트의 <Sailing>도 서비스 차원에서 한 곡 더 들려주시고요, 혹여 다른 리퀘스트 없으면 그룹 Opus의 <Flying high>를 덤으로 올려주시면 예쁜 선배 누나 소개해 드릴게요. 그 누나가 무지 예쁘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젊은 남정네가 뭔가 해볼라치면 선배 누나도 성형을 시켜야만 하니, 제 알아서 성형하는 여자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