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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낭만과 사색 사이에서
그곳, 친퀘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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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교수의 인문학과 예술 이야기
Jan 12. 2025
그곳, 친퀘테레
파란 하늘에 경계 없이 맞닿은
코발트빛 지중해의 한 모서리에
해풍에 산란된 인간의 삶이
바닷가 절벽 위에 내려앉아
파스텔 빛으로 졸고 있는 마을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분주한 날이다.
지난 몇 년간 가슴으로만 그려온 친퀘테레를 찾아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이탈리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친퀘테레와의 인연은 지금껏 닿질 않았다.
눈과 발에 익숙해질 때까지 같은 곳을 자꾸 돌아다니는 여행습성 때문이다.
이러한 습성은 비단 여행에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행위 전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반복적이라거나 재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습성을 두고 ‘전반적인 삶의 습성’이라고 말한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쨌든 오늘에야 친퀘테레를 찾아가는 것은 그동안 친퀘테레를 피하려 했다기보다는, 이제야 피렌체의 돌길이며 예술작품, 건축물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문구를 찾자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인 셈이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기 전부터 들떠있던 마음은 “사진은 핑곗거리를 찾으려는 이를 위한 '허상의 도피처'일뿐이며 대리만족을 위해 잘 다듬어진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속삭이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피렌체 중앙역>을 출발한 기차는 한 시간 남짓 토스카나의 평원을 달려 <피사역>을 향해 달려간다.
피렌체에서 친퀘테레의 초입인 <라스페치아>까지는 직행으로 연결된 열차 편이 있긴 하지만 운행 횟수가 많질 않아서 출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경유 편이라고는 하지만 중간에 갈아타야 하는 곳이 <피사역>이라고 하니, 그곳 선로 옆 벤치에 앉아서 잠시나마 피사의 공기를 더 들이켜고 싶은 마음이 '둘러가는 길'을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익숙함이란 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 내고 있는 부산물이다.
창 밖을 바라다본다.
끝이 없을 것 같이 이어져 흐르는 토스카나의 너른 들판과 낮은 구릉이 이젠 외롭다거나 허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이다, 이제라도 토스카나에게 길들여졌으니.”
대부분의 길들임은 사람을 아프게 하지만 어떤 길들임은 그렇지 않다.
창밖의 풍경에서 어린 시절에 뛰어놀던 시골마을 뒷산과도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
지나간 날들이 창밖 풍경에 오버랩되며 다가왔다가 가마득하게 멀어져 간다.
시간은 가까워질수록 빠르게 흐르고 멀어질수록 느리게 흐른다는 걸 머리숱이 줄어들 무렵에 겨우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시간은 흐르고 흘렀고 지금의 나는 여기에 와있다.
"그래 삶이란 건, 언제나 머무름 없이 흘러가는 불가해한 것인가 보다."
토스카나의 시골마을은 따가운 시선으로 이방인을 바라보지 않는다.
토스카나의 시골마을은 ‘세월이 뭉개어 놓은 아득한 시간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알게 된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마을 곳곳에 뿌려져 있는 작은 공간과 공간의 실루엣을, 새벽 강을 품고 흐르는 물안개처럼 보듬어 안아, 경계 뭉그러진 환영으로 가슴에 새겨 넣으려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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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교수의 인문학과 예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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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도끼와 들뢰즈의 도끼
저자
고일석(Dr. Franz KO) 교수(동국대학교(former))의 서재입니다. 인생과 예술, 여행과 방랑, 철학과 문학, 사회와 문화에서의 지식과 사색을 텍스트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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