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해외에 살다보니 한국에 들어간 지가 거의 2년 반이 됐다. 잠깐이라도 가족들과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자꾸 한인마트를 찾게 된다. 참기름 내 폴폴 나는 꼬마김밥이 가득한 곳, 익숙한 과자와 냉동만두가 꽉 차있는 곳, 점원에게 들깨가루가 어디 있는지 한국말로 물어볼 수 있는 곳.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면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덜어지는 기분이다.
멀리 있는 고향의 음식, 냄새를 그리워 하는 건 한국인 뿐만이 아닐테다. 그래서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는 외국인 마켓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한 건 터키마켓. 독일은 터키계 이민자가 가장 많이 사는 국가 중 하나다.
많은 터키마트들은 할랄 육류를 파는 정육코너부터 신선한 야채, 치즈까지 온갖 식재료로 가득하다. 처음에는 터키마트에 깍두기 용 무와 시금치(독일 슈퍼의 시금치는 보통 샐러드 용이라 한식엔 안 맞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터키 마트에는 늘 커다란 시금치가 있다)를 구하러 갔다가 그곳의 다채로운 디저트들에 반해서, 요즘은 이유없이도 자주 들른다.
특히 발길을 사로잡는 건 갓 구워져 나온 통통한 바클라바. 바클라바는 층층이 견과류를 머금은 얇은 파이 위에 혀가 마비될 정도로 달콤한 시럽이 촉촉히 뿌려진 터키식 전통과자인데 솔직히 하나를 다 먹기도 힘들 정도로 달다. 한 입 먹자마자 후회할 맛이지만 동화책 속에서 본 듯한 황홀한 생김새에 홀려 가끔씩 사오게 된다.
동화책 속 과자라고 하면 터키쉬 딜라이트를 빼놓을 수 없다. 나니아 연대기에도 등장하는 이 디저트는 바클라바와 마찬가지로 아주 찐한 단맛이다. 식감은 쫀득한 젤리같고 모양만 화려할 뿐 특별한 맛은 아니어서 죽기 전에 꼭 먹어봐야 할 디저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쯤 먹어볼 만 하다.
그런가하면 생김새만큼이나 고급스러운 단 맛을 자랑하는 디저트도 있다. 바로 할바(할와). 나는 캐나다에 놀러갔을 때 할바를 처음 먹어봤다. 당시에 알던 캐나다인 가족이 집에서 즐겨먹는 간식이라고 소개를 해줬는데 입에 넣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다. 달콤한 동시에 고소하고 살짝 씹으면 입 안에서 사르르르 녹아 없어진다. 목이 저릴 정도로 단 맛이 강하지만 참깨 소스의 찐득한 맛과 섞여서 굉장히 조화롭다. 한국에 살 때는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터키마트에서 할바를 다시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피스타치오가 들어간 것부터 해서 초콜렛까지 종류도 식감도 다양한데 일반 슈퍼에는 거의 안 팔지만 터키 마트에선 쉽게 구할 수 있다. 아 참, 먹기 전에 절대 칼로리를 확인하지 말기를 권한다. 어느 정도를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
터키마트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은 단밤이다. 한국 맛밤과 똑같은 맛인데 구하기도 쉽고 무엇보다 정말로 맛있어서 자주 사먹는다. 케밥 맛, 달콤한 맛이 있는데 나는 심플하게 달달한 게 좋아서 달콤한 맛을 선호한다. 끝도 없이 들어가는 촉촉한 달콤함.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바로 대추야자. 대추야자를 처음 먹은 것도 캐나다였다. 중동 음식을 캐나다에서 처음 먹어봤다니 갑자기 엉뚱하게 느껴지지만, 대추야자는 중동 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에서 꽤나 사랑받는 간식이다.
사실 캐나다에서 처음 먹었을 때는 별 맛이 없었기 때문에 독일 슈퍼마켓에서 대추야자를 볼 때마다 고개를 돌리며 지나치곤 했다. 그러다가 오트밀에 설탕 대용으로 넣으면 맛있다는 조언에 솔깃하여 슈퍼에서 대추야자 한 봉지를 사버렸고, 웬 걸. 지금까지 대추야자를 무시하며 지낸 시간이 아까워졌다. 이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슈퍼에서 매일매일 대추야자를 사다 나르다가 터키마트에서 대형 박스에 담긴 대추야자를 발견하게 된다.
대추야자는 곶감과 살짝 비슷한 맛이지만 훨씬 카라멜 향이 강하다. 곶감처럼 결대로 찢어지는 쫀득한 말린과일 식감에 찐득하고 묵직한 단맛이 정말 일품이다. 일반 슈퍼에서 파는 건 좀 딱딱한 편이라 오트밀에 넣거나 베이킹에 사용하려면 물에 불렸다가 쓰는 편이 좋다. 하지만 터키마트 산 대추야자는 불릴 필요조차 없다. 잇몸으로도 씹을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무엇보다 입안을 꽉 채우는 카라멜 향이 대단하다. 당연히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아직 터키를 가보지 못 했다. 동네에서 봤던 음식들과 터키에서 반갑게 조우할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마무리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