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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rik Backman Jun 15. 2017

"괜찮아, 무서워하지마."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01.


지금이 제일 좋을 때지.

노인은 손자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을 알만큼 알지만 편입되기는 거부할, 젊은 나이. 

벤치에 앉아 있는 노아의 발끝은 땅바닥에 닿지 않고 대롱거린다.


노아의 할아버지는 어른답게 굴라고 잔소리를 많이 들었던 사람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을 만큼 나이를 먹었다.

그 나이 역시 나쁘지는 않다.


벤치가 있는 곳은 어느 광장이다.

노아는 광장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을 보며 눈을 크게 껌뻑인다.

아이는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고 할아버지에게 실토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그들이 자주 벌이는 게임이다. 


노아가 눈을 감으면 할아버지가 두 사람 모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아이를 데려간다. 

눈을 질끈 감고서 할아버지와 같이 시내로 나가 버스를 네 번이나 갈아타야 할 때도 있고,

할아버지가 호숫가에 있는 집 뒤편의 숲속으로 데려가고는 그만일 때도 있다.

이따금씩 노아가 잠이 들 만큼 오랫동안 배를 타기도 하는데, 한번은 할아버지가 “일어나렴” 하고 속삭이더니 지도와 나침반을 주며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연구해보라고 할 정도로 멀리 간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길을 잃어버릴 일은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평생 할아버지의 믿음을 저버린 적 없는 두 가지가 수학과 손자다.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남자 셋을 달까지 보내는 법을 계산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은 수학 덕분에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올 수 있었다. 숫자를 믿으면 무사히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곳은 좌표가 없다. 길도 없고 여기까지 오는 길을 가르쳐주는 지도도 없다.

노아는 할아버지가 오늘 눈을 감으라고 했던 것을 기억한다. 할아버지의 집을 빠져나와 호수로 데려간 것도 기억한다. 눈을 감아도 주변에서 나는 소리와 물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으면 호수라는 걸 알 수 있다.

축축한 나무를 딛고 배에 올라탔던 것도 기억하지만 거기가 끝이다. 자기와 할아버지가 어쩌다 이렇게 둥그런 광장의 벤치까지 오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곳은 처음이지만, 이사한 집에서 썼던 물건들을 본 것처럼 모든 게 눈에 익다.


“이 광장이 하룻밤 새 또 작아졌구나.”


그러고는 다시 휘파람을 분다.

노아가 묻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할아버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닫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미안하다, 노아노아. 여기서는 생각을 하면 말이 돼서 나온다는 걸 깜빡했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이름을 남들보다 두 배 더 좋아하기에 항상 ‘노아노아’라고 부른다.

할아버지는 한 손을 손자의 머리에 얹지만 머리칼을 헝클어뜨리지 않고 그냥 손가락을 얹어놓기만 한다.



“무서워할 것 없다, 노아노아.”


“오늘은 지도도 그렇고 나침반도 그렇고, 도움을 될 만한 도구를 아무것도 주지 않으셔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어떻게 찾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노아가 속삭인다.


“여기서는 그런 것들이 있어봐야 아무 소용 없을 거다, 노아노아.”


“여기가 어딘데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손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소리 없이, 눈물 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그건 설명하기가 어려운 문제로구나, 노아노아. 설명하기가 정말, 정말 어려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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