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쓰꾸쓰 ep1. 나는 누구인가
“태현님도 취미 부자시잖아요”
어느 모임에서 대화 주제가 취미로 넘어온 순간 한 지인이 말을 건넸다. 내가 취미 부자였나? 굳이 따지면 노력형 취미 컬렉터에 가깝다. 오히려 밖에 잘 나가지 않는 지독한 집돌이다. 취미 컬렉터가 되기 시작한 건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주말에 집에만 있었어요”라고 하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다.
글쓰기 수업을 시작으로 러닝, 소묘, 복싱, 사진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취미를 발굴했다. 지인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걸 하고 있었다 보니 “요즘엔 뭐 하고 계세요?”라는 물음이 정례화된 안부 인사로 굳어졌다. 반복된 만남으로 대화도 정해진 루틴을 따라 무미건조해질 법도 한데 새로운 취미는 작지 않은 활력이 됐다.
그러다 진짜 취미를 가진 분들을 만나면 불현듯 부끄러워졌다. 겉핥기식 취미 수집가인 나와 다르게 그분들은 취미에 대한 정돈된 생각을 가졌다. 남들이 모두 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취미일지언정 스스로는 이걸 왜 구태여 하는지, 왜 할 수밖에 없는지를 인지하고 있었다. 새로운 것 자체에 의미를 둔 나와는 결이 달랐다. “듣던 대로 이런 게 재밌더라고요”와 같은 수준의 감탄사는 깊은 흥미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걸 느끼던 참이었다.
최근 취미의 기준을 다시 곱씹게 한 일이 있었다. 낚시를 취미로 가진 한 지인 덕분이다. 그는 고즈넉한 분위기와 물고기가 잘 낚이는 시간을 고려해 새벽에만 낚시터를 찾는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얼마나 큰 물고기를 잡아봤는지를 신나게 썰로 풀었다. 손가락 끝부터 어깨까지 오는 어마어마한 물고기를 30분의 사투 끝에 잡았다고 한다. 그러다 이 손맛을 꼭 느끼게 해주고 싶은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낚시를 가자고 진심으로 제안했다.
취미의 사전적 정의에는 '비전문적이지만 즐기기 위한 일'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도 있다. 낚시에 대한 꾸밈없는 지인의 감상을 듣고 취미의 두 번째 정의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 두터운 이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확고함을 그에게서 봤다.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대상을 이해하려는 행위가 취미의 본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하면서도 쌓이지 않는 기분이 들던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했다.
영국 소설가 서머싯 몸은 어떤 면도의 방식이라도 저마다의 철학이 있다고 했다. 요즘 취미로 삼은 달리기에 대입하자면 그것은 간단히 뛰는 속도, 거리, 시간대일 수 있다. 혹은 누군가와 함께하는지, 뛰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끝나고 하는 루틴이 무엇인지가 될 수도 있다. 그간 큰 생각 없이 했던 행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나름의 의미가 생성된다. 그러다 보면 무언가가 쌓이지 않을까. 저녁부터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와 달리 아직 날씨가 맑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본다. 좋은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