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쓰꾸쓰 ep2.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
"그거 사랑이에요."
자랑하듯 꺼낸 일화에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기자들과 만나 "술을 마셔도 너무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를 할 때였다. 당시 부 선배들과 밤늦게까지 얼근하게 술을 마셨던 일을 꺼냈다. 그날은 장기 휴직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A 선배와 또 다른 부서원인 B 선배와 함께였다. A 선배는 아내가 친정에 가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외출해 술을 마음껏 마시는 듯했다. 3차 자리를 마치니 자정을 넘긴 시간이었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A 선배를 택시에 태웠다. 집 주소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택시 기사가 선배 상태를 보고 동행자 없이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집과 반대 방향이었지만 고민하지 않고 택시에 올라탔다. 예기치 않게 중간에 택시에서 내렸다. A 선배가 구토를 할지 모른다고 우려해서다. 애초 차로 15분이면 도착했을 거리지만 15분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선배를 부축해 꽤 긴 언덕길을 올랐다. A 선배가 제대로 걸을 수 없어서 그랬는지, 혹은 휴직 전 부서장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하소연해서 그랬는지 A 선배 집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생각보다 꽤 흘렀다.
그날 귀가는 한 시가 훌쩍 지났을 때 했다.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는 사실이 피곤함보다 뿌듯함으로 다가온 듯했다. 이야기를 듣던 지인이 꽤 확신하듯 "그거 사랑이에요"라고 말했다. 반년이 넘었지만 그 말이 기억에 남아있다.
요즘 한강 공원을 자주 거닌다. 대체로 뛰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산책도 한다. 산책할 땐 러닝할 때와 달리 주변이 시야에 잘 들어온다. 한 모녀가 눈에 띄었다. 평일 저녁 마음이 맞는 사람과 저렇게 같이 걸을 수만 있다면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올해 4월 어머니와 떠난 유럽 여행이 떠올랐다. 지금 가장 선명하게 기억하는 장면들도 길을 같이 걷던 순간들이다.
사랑이란 게 대단한 말이나 거창한 이벤트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한밤중 누군가의 팔을 부축하며 걷는 일, 한강 둔치에서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 서로에 의지한 채 유럽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일. 결국 사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이다. 사랑에 대한 믿음이 흐릿해질 때 떠올리기로 한다. 먼 훗날 이 시간을 되돌아볼 때 누구와 어떤 속도로 걷고 있을까. 천천히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랑을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