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1

by 바담풍




통합으로 가는 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답은 '통합'에 있다. 통합은 다름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갈등을 숨기거나 억누르는 게 아니라 드러내고 토론을 통해 숙성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 수 있는 공통의 규칙을 만드는 힘,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사회 통합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몇 가지 핵심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시민 역량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는 가장 큰 위기는 '대화할 줄 모르는 사회'다. 학교와 가정, 직장에서조차 우리는 질문과 토론을 배우지 못했다. 그 결과 갈등 앞에서 우리는 침묵하거나 분노로 폭발한다.

시민 역량을 키우려면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에 머물러선 안 된다. 잘 듣는 법, 함께 생각을 나누는 법, 스스로 질문하는 법, 다른 관점도 마주하는 태도. 이 네 가지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비판적 사고와 경청,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는 국·영·수만큼 중요한 필수 과목이다. 특히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시급하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다양한 관점을 비교하며, 감정적 자극보다는 사실과 논리에 기반해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필요하다. 건전한 정보 생태계 없이는 민주적 토론도, 사회적 통합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참여 기회의 평등이다. 지금의 정치와 언론은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숙의 민주주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아일랜드 시민의회는 좋은 모델이다. 무작위로 선출된 시민들이 숙의를 통해 낙태 합법화, 동성혼 허용 등 첨예한 사회적 쟁점을 해결한 민주주의 모범 사례다. 우리도 무작위로 뽑힌 시민들이 정책을 논의하는 시민의회, 시민배심원제 같은 숙의민주주의 방식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통합은 거창한 국가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실천에서 시작된다. 지역 단위 소규모 토론 모임을 활성화하고 이를 지원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동네 도서관이나 주민센터에서 정기적으로 시사 토론회를 열고 지역 현안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논의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시민들은 생계에 바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국민 토론 참여소득'이다. 국민 토론 참여 소득은 독서, 대화, 토론, 지역문제 해결 프로젝트 등 공적 토론 활동에 보상을 주어 참여를 촉진하는 제도다. 시범사업을 통해 대상(소규모 참여자·프로젝트)과 지급 기준을 정하고, 효과성·부작용을 평가한 뒤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실현 가능하다.


또한 진정한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포용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현재의 다수대표제와 승자 독식 정치 구조는 소수 의견을 배제하고 갈등을 심화시킨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해 소수 의견을 보장하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의형 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신뢰 생태계 복원이다. 통합의 출발점은 신뢰다.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공정한 규칙을 보장하지 않으면 그 어떤 대화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한국 정치의 가장 큰 과제는 국민 신뢰 회복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평균 3.2점으로 OECD 최하위권이다. 해법은 정치권의 변화다. 무엇보다 토론 의무화가 시급하다. 중요한 정책 결정과 예산 심사는 공개 토론을 원칙으로 하고, 국회·지자체의 주요 심의 과정은 모두 생중계·기록되어야 한다. 의원은 자신의 정책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질의에 답할 책임이 있다.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은 가짜뉴스와 혐오 콘텐츠의 무분별한 확산이다. 특히 정치 유튜버와 일부 온라인 매체들이 생산하는 왜곡된 정보는 시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허위정보 유통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이나 프랑스의 '가짜뉴스 방지법' 같은 해외 사례를 참고하여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신뢰가 약해지면 협력은 불가능하고 사회적 자본은 급속히 소멸한다. 사회적 자본은 돈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위기 때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재난이나 갈등이 닥칠 때 서로를 믿고 돕는 사회는 빠르게 회복하지만 불신이 만연한 사회는 같은 문제 앞에서도 더 깊이 무너진다.


따라서 사회적 자본을 키우는 일은 경제정책 못지않은 국가 과제다. 경쟁 중심의 교육을 넘어 협력과 대화 문화를 가르쳐야 한다. 마을 단위 의논 문화, 학교 토론 수업, 직장의 참여형 의사결정은 신뢰를 회복하는 실질적 훈련장이 된다.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 바라볼 때, 사회는 비로소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공동체로 성장한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09화갈등 해결의 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