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문제는 '어떻게'다.
토론을 활성화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교육 혁신, 사회적 인프라 구축, 그리고 참여 유인책. 교육과 인프라는 장기적 투자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장에서는 세 번째 방법, 즉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토론 참여소득'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이는 대화와 토론을 사회적 기여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제도로, 갈등 비용을 줄이고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실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이다.
참여소득의 철학적 기반
‘참여소득’이란 모든 시민이, 공동체에서, 일정한 형태의 사회적 기여를 하는 조건으로 지급되는 소득을 말한다. 여기서 '참여'는 단순히 임금 노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족을 돌보는 일, 마을 공동체를 지키는 일, 공동체 화합을 위한 교육, 환경보호, 문화 예술 기여 등 시장에서는 가치가 평가되지 않지만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활동들이 모두 포함된다.
이 개념은 영국의 경제학자 앤서니 앳킨슨(Anthony Atkinson)이 처음 제안했다. 그는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렵고, 반대로 근로의무를 강제하는 워크페어(workfare)는 비효율적이며 인권침해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그래서 양자의 장점을 절충한 중간 형태의 복지제도로 참여소득을 설계했다.
참여소득의 핵심은 '상호성'이다. 즉, 모든 시민이 공동체로부터 혜택을 받는 동시에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원리를 제도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제도의 정당성을 높이고, 수혜자에 대한 낙인을 최소화하며, 공동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참여소득은 단순히 돈을 받고 무언가를 '일'처럼 수행하는 제도가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서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를 되묻는 새로운 방식의 실천이다. 기본소득이 인간의 생존을 전제로 한 '존재의 조건'이라면 참여소득은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조건'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는 단지 간섭받지 않는 상태에 그치지 않는다. 진짜 자유는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스스로 참여를 선택할 수 있는 상태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무언가에 참여할 때 진정으로 자유롭다고 느낀다. 참여소득은 바로 이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다. 단순한 복지 수혜자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시민이 되는 것이다.
사회 제도는 경제적으로 가장 불리한 이에게도 이익이 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참여소득은 바로 그 취약한 이들이 자신의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돕는다. 노력한 만큼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참여 기회를 통해 공정함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10가지 핵심 역량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정치적 참여와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삶이다.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목소리를 내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참여할 수 있어야 인간다운 삶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참여소득은 이처럼 시장이 외면했던 활동—돌봄, 지역 공헌, 문화 예술 활동, 학습과 나눔의 실천 — 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고 공적으로 인정하고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기본소득을 넘어 토론 참여소득으로
기본소득은 생존의 불안을 줄이는 데 분명한 역할을 한다. 매달 일정한 소득이 보장된다면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고, 개인은 불안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의 위기는 단지 소득 부족에만 있지 않다. 더 깊은 문제는 관계의 단절, 공동체의 붕괴, 그리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다. 이 위기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현금 지급을 넘어,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고 공동체가 작동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필요하다.
참여소득은 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보상한다. 가족을 돌보는 일, 마을 공동체를 지키는 일, 환경 보호, 문화와 예술에 대한 기여,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대화와 토론까지 포함된다. 시장에서는 가격으로 평가되지 않았지만 사회를 지탱해 온 활동들이 참여소득을 통해 공식적인 가치로 인정받는다. 이는 한 번도 가격표가 붙지 않았던 기여를 사회적 자산으로 끌어올리는 전환이다.
참여소득이 전제하는 핵심 인식은 단순하다. 일하는 사람만 가치 있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무가치하다는 이분법을 거부한다. 대신 "기여 형태가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참여의 형태가 다양해질수록 제도는 감시와 통제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게 된다.
이 가운데 토론 참여소득은 참여소득의 가능성을 한 단계 더 확장한다. 기존 참여소득이 주로 돌봄, 환경, 봉사 등 물리적·실천적 활동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면, 토론 참여소득은 사회적 갈등을 다루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핵심 행위인 ‘대화와 공론 형성’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참여의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시민이 일상적으로 사회에 연결될 수 있는 경로를 만든다.
토론 참여소득의 핵심 가치는 공동체적 대화를 제도화한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이 상황에서 시민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존재로 머무르지 않고, 직접 토론에 참여해 의견을 나누고 해법을 모색하는 경험은 공동체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갈등을 없애는 장치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고 공동의 해법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또한 토론 참여소득은 높은 포용성을 지닌다. 신체적 제약, 거주 지역, 직업 유무와 관계없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누구나 동일한 조건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는 특정 집단에 한정되지 않고, 서로 다른 세대와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같은 조건에서 공론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뜻이다. 참여 자체가 곧 사회적 연결망이 된다.
무엇보다 토론 참여소득은 민주시민의 역량을 키운다. 경청하는 법, 근거를 제시하는 법, 다른 의견과 합의하는 경험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사회 전체의 대화 수준을 끌어올린다. 이는 장기적으로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고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긍정적 효과로 이어진다.
기본소득이 혼자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면, 참여소득은 함께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토론 참여소득은 그 기반 위에서 사회가 대화하며 움직이게 하는 장치다. 이들이 결합될 때 우리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연결되며, 정치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연대를 동시에 지켜내는 사회, 그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