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내 삶을 바꾼다

by 바담풍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해지는 이유는 감정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우리는 경청하고 설득하며 합의에 이르는 연습을 거의 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를 바꾸기 위한 제안이 ‘토론 참여소득’입니다. 지역과 온라인의 구조화된 토론에 참여하는 시민에게 일정한 수당을 지급해, 공동체의 갈등을 줄이고 민주적 대화를 만드는 사회적 가치를 정당하게 보상하자는 제도입니다.


토론 참여소득은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줄이며, 대화와 토론을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그리고 널리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대화 #토론 #디베이트 #화합 #통합 #사회적 가치 #기본소득 #참여소득 #공동체 #갈등 #분열 #








정치, 나와 가장 가까운 문제


"정치? 지긋지긋해. 어차피 바뀌지도 않아."


많은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젓는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게 마치 "나 국회의원 될 거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취급된다. 주변에서 정치 이야기를 꺼내면 "너 정치하려고 그러냐?"라며 핀잔을 준다. 정치에 대한 환멸이 깊다.


안타깝게도 정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서민층일수록 정치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모른다. 최저임금 인상 최대 수혜자가 최저임금 논의를 외면한다. 심지어 반대하기까지 한다. 가장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무관심하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 할 게 바로 정치다. 정치가 바뀌면 길거리 간판이 바뀌고, 아이들의 학교 급식이 달라진다. 매달 지출하는 세금의 액수도 바뀐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삶을 가장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문제가 바로 정치다.


정치의 변화는 모두에게 똑같이 다가오지 않는다. 재산이 많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변화란 "어? 내 통장에서 돈이 좀 줄었네" 정도다. 하지만 서민과 사회적 소수자에게는 다르다.


농어촌 지원금 삭감, 노인 복지 축소, 아동 복지와 교육 예산 감소는 '조금 덜 받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을 위한 일자리 지원, 주거 보조, 학자금 대출 감면이 줄어드는 것은 "미래가 사라지는" 일이다. 가진 게 적을수록 정치의 파도는 더 크다. 정치의 선택은 사회적 약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우리를 덮친다.


정치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삶의 뿌리와 직결되어 있는 이유다.






정치적 양극화, 무엇을 망가뜨리나


정치적 양극화는 사회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 그리고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본 조건 자체를 서서히 무너뜨린다. 갈등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문제다. 이런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정치가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을 잃어갈수록, 우리 사회는 눈에 띄지 않게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변화는 가장 먼저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서 드러난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정책은 내용이 아니라 진영으로 평가된다. 같은 정책이라도 우리 편이 하면 성과가 되고, 상대 편이 하면 실패로 간주되는 식이다. 이 순간 민주주의의 핵심인 책임 정치는 힘을 잃는다. 잘한 정책은 이어지지 않고, 잘못된 정책은 고쳐지지 않는다. 입법 과정도 마비된다. '국민에게 필요한가'보다 '우리 진영에 유리한가'가 판단 기준이 된다. 선거는 치러지지만, 정책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흐름은 미디어와 플랫폼 환경 속에서 더욱 빠르게 확산된다. 온라인 환경에서 알고리즘은 이용자가 이미 선호하는 의견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자신이 믿고 싶은 정보만 접하게 되고, 상대 진영의 주장은 왜곡된 모습으로만 인식된다. 자극적인 표현, 극단적인 주장과 허위 정보는 빠르게 확산되지만, 이를 바로잡는 정정보도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양극화를 더욱 강화시킨다.



그 영향은 정치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치적 갈등은 국회나 선거철에만 머물지 않는다. 가족 모임에서, 직장에서, 학교와 친구 관계에서도 정치적 입장이 관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상대는 더 이상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 된다. 정치적 입장이 도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때,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협력은 어려워지며, 사회는 고립된 개인들의 집합이 된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서 국민의 92.3%가 가장 심각한 사회 갈등으로 '정치적 갈등'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는 본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양극화된 정치는 사회 전체를 긴장 상태로 몰아넣는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더 깊은 문제는 사고방식 자체를 바꾼다는 점이다. 우리 편과 상대 편, 옳음과 틀림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게 된다. 복잡한 문제의 원인과 맥락은 사라지고, 어느 편에 서 있는지가 먼저 판단된다. 논리적 설득은 사라지고 감정적 대립만 남는다. 질문은 공격으로, 반박은 배신처럼 느껴진다. 타협은 패배로 간주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사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서서히 잃어간다.


결국 그 부담은 시민의 몫이 된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할수록 중요한 개혁은 미뤄지고, 포퓰리즘 공약만 반복된다. 청년 일자리, 주거 불안, 복지 격차 같은 삶과 직결된 문제들은 해결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시민들은 정치가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점점 내려놓게 된다. 양극화된 정치 속에서 갈등은 정치인들에게는 유용한 자원이 되고, 문제 해결은 오히려 책임과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된다. 그 사이 국가는 제자리에 머물고, 시민만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정치적 양극화는 의견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 사회적 신뢰, 그리고 시민의 일상 자체를 잠식하는 구조적 위험이다.






설득 없는 토론, 개소리의 정치


정치는 공동체의 문제를 함께 푸는 대화의 장이다. 특히 선거 토론은 유권자가 후보의 철학과 역량, 태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공적 무대다. 그런데 이 중요한 공간에서조차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경험하고 있다.


상대방 주장을 경청하기보다는 반박을 위한 반박에 몰두한다. 논쟁의 본질은 흐려지고, 상대를 꺾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된다. 설득보다 진영의 확신에 갇히는 경우가 많다.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려 해도 상대방이 사소한 표현을 물고 늘어지며 말꼬리를 잡는 방식으로 대화를 끊어버리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이런 정치 언어는 시민에게도 전염된다. 여야의 날 선 말씨름은 국회의사당을 넘어 일상 언어로 번지고, 결국에는 '네 편, 내 편'의 감정적 분열을 일으킨다. '말의 거칠어짐'은 곧 '행동의 거칠어짐'으로 이어지고 시민 간 대화까지 망가뜨린다.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말이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 만연한, 특히 선거철만 되면 좀비처럼 부활하는 헛소리들이다.


프린스턴 대학교의 철학과 명예교수 해리 G. 프랭크퍼트는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에서 현대 사회의 언어가 진실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그는 오늘날 사회가 점점 더 진실에도, 거짓에도 관심 없는 언어, 즉 '개소리(bullshit)'로 가득 차고 있다고 말한다.


개소리 핵심은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다. 개소리를 말하는 사람은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에 관심이 없다. 다만 자신의 목적 — 인정받고 싶거나, 유리한 이미지를 만들거나,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욕망 — 을 위해 진실 자체를 지우고 언어를 도구화한다. 쉽게 말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일단 내가 원하는 효과만 나면 돼"라는 태도다.


이 현상은 정치 토론에서 특히 교묘하게 드러난다. 숫자나 통계로 포장하지만 정작 구체적 실행 계획이 없는 공약,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맥락을 잘라내는 발언, 질문의 핵심을 피해 감정적 문구만 반복하는 답변이 모두 그 예다. 이런 발언은 사실 여부보다 '어떻게 들리느냐'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토론은 정치 쇼로 전락한다. 설득의 장이 아니라 자극적인 한마디를 뽑아내는 무대로 바뀌고, 유권자는 내용보다 장면에 반응하게 된다. 몇 초짜리 짤과 밈만 남고 정작 그 안에 담긴 정책과 철학은 사라진다. 무엇보다 개소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잘못된 말이 드러나도 "그냥 한 말이에요"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면죄된다.


흥미로운 점은 유권자들은 이런 ‘개소리’에 의외로 관대하다는 사실이다. 헛소리라도 거기서 진정성이 느껴지면 사람들은 호감을 갖는다. 진실보다 진심에, 사실보다 태도에 더 매료되기 때문이다. 솔직해 보이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진심이 담겼다면 그 말도 옳을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개소리가 가진 가장 무서운 함정이다. 세상에는 진심으로 나쁜 말을 하고, 진심으로 괴변을 늘어놓는 이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잃어버린 진심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흉기가 될 뿐이다.


정치 언어가 개소리화될 때 우리는 단순히 '거짓말'을 바로잡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개소리는 팩트 체크가 통하지 않는 언어 게임이기 때문이다. 진실보다 말의 효과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이 구조 속에서 유권자는 말의 표면이 아니라 그 말이 작동하는 방식을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능력은 바로 토론교육을 통해 길러진다. 토론교육의 핵심은 '근거 기반 사고'다. 근거를 바탕으로 사고하고, 주장의 진위를 따지며, 말의 책임을 묻는 훈련이다. 토론교육은 개소리에 맞서는 시민적 방어력이다. 진실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고, 말의 품격을 회복하는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대통령 선거뿐 아니라, 총선과 지방선거, 교육감 선거에서도 토론은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 토론은 '있는 것 같지만 실질은 없는'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언론사 초청 토론은 질문이 진부하고 답변은 사전 각본에 가까우며 유권자가 원하는 실질적 논쟁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에서는 정책보다 인신공격, 지역 민원 해결 능력 경쟁이 중심이 된다. 교육감 후보 토론은 형식과 진행의 부실로 사실상 '공방 없는 자기 PR' 시간으로 소비된다.


정쟁 중심의 발언, 이미지 소비를 위한 멘트, 의도된 말실수 유도 등은 토론을 정교한 설득의 장이 아니라, 자극적 장면을 만들어내는 연출의 일부로 바꿔버린다. 유권자는 점점 소외되고, 주요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은 사라지며, 답변은 돌려 말하거나 회피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토론이 결국 SNS나 유튜브에서 '자르고, 붙이고, 편집된' 클립 영상으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의 맥락과 정책의 본질은 사라지고, "누가 이겼나", "누가 더 공격했나"라는 프레임만 남는다.




화, 목, 토 연재
이전 22화단절을 넘어: 다시 연결되는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