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그책방'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수업에 제출한 글입니다.>>
새해 첫날, 노트북을 열고 자판을 두드립니다. 글쓰기 숙제를 하려고요. 쓰고 싶은 주제가 뚜렷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마감이 있어야 뭐라도 쓰게 되니 또 신청을 해버렸습니다. 자꾸 써야 발전하니까요. 5편을 관통하는 저의 주제는 ‘나에 대한 고찰’입니다. 나르시시스트 같다거나 오글거린다고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저, 진심입니다. 그러나 그 진심이 우스움이 되어버릴까 약간은 두렵기도 해요. 타인에게 보여지는 글이란 자고로 일말의 공감이나 아하 포인트가 있어야 할 텐데 넋두리로 가득 찬 일기장이 되어버릴까 봐요. 그러면 왜 이런 주제를 선택했냐고요? 저란 사람을 제일 모르겠거든요. 뭘 잘하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요. 예를 들어, 이전에 임작가 님이 “크리스티나 씨는 언변이 화려하여...”라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반대쯤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모든 사람은 미스터리이고 수수께끼 같죠. 절대 알 수 없는 무엇. 그러니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어쩌면 평생 불가능한 도전일지도요. 그럼에도 제가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은지, 혹은 하기 싫은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저라는 망망대해의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상담도 받고, 글도 씁니다. 모른다고 내버려 두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평생 길을 잃을 것 같거든요. 물론, 저라는 존재는 주민등록증 숫자와 지문은 변하지 않을지언정 생각과 행동은 계속 바뀔 거예요. 그래도 저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어요. 5% 라도요. 그럼 시작해 볼게요.
작년에 집단상담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어요. ‘저는 저 자신을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는 것을요.’ 물론, 뭔가를 잘 해냈을 때는 잠깐 기쁘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느끼죠. 예를 들어, 학생이 잘 가르쳐주어 감사의 말을 전한다거나, 교사 연수를 진행하고 좋은 피드백을 받는다거나, 주변 지인들이 해주는 칭찬의 말들이요. 그런데 기쁨과 인정은 달라요. 제 기준으로 기쁨과 인정을 정의해 본다면, 기쁨은 타인으로부터의 오는 달달한 디저트이고, 인정은 저 자신으로부터 오는 든든한 집밥 같은 거예요. 설탕과 버터가 가득한 디저트는 순식간에 당을 올려주어 기분 좋게 만들어 주지만, 건강에 이롭지는 않죠. 반면 천연 조미료와 좋은 재료만으로 만든 집밥은 살살 녹는 맛은 아니지만 든든하고 건강하게 몸을 채워주죠. 집밥으로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서 그럴까요? 늘 부족하고, 더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껴요. 그래서 쉬는 날의 스케줄도 꽤나 빡빡한 편이에요. 아프거나 밤을 새워 정신이 헤롱헤롱 하지 않는 이상 침대에 눕는 일은 거의 없어요.
아무 일정도 없는 하루의 모습은 이래요. 웬만하면 휴일도 알람을 맞춥니다. 8시간 이상 자면 억울하잖아요? 추운 겨울, 이불 밖은 여전히 위험하지만 10분 안에는 일어나려 노력해요. 가글을 하고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신 후 스트레칭을 합니다. 명상도 하고요. 명상을 하는 짧은 시간도 뭔가 ‘안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기피하기도 했지만 정신수양에 좋다고 하니 10분 미만이던 시간을 최근 20분으로 늘렸어요. 아, 한 달 전부터는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30분 정도 쓰고도 있어요. 창조성에 좋다는데 아직 효과는 모르겠지만요. 사실 모닝루틴에 러닝도 있었는데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긴 목 디스크에 좋지 않다고 의사 샘이 만류하셔서 쉬고 있어요. 휴일만 이렇냐고요? 출근할 때도 비슷해요. 다만 뭔가를 생략하거나 시간을 단축시키죠. 모닝루틴이 끝나면 빠르게 옷을 챙겨 입고 노트북과 책을 동여 메고 카페로 갑니다. 보통 오래 있어도 좋을 스타벅스로요. (12년간 스벅 vip를 놓치지 않는 이유인가 봐요.) 4~5시간 일이나 독서로 시간을 ‘알차게’ 보낸 후 집으로 와요. 보통 빵과 요거트로 끼니를 챙기고 고민을 시작합니다. 무엇을 해야 시간 낭비가 아닐까 하는 고민이요. 할 일들의 목록은 늘 절 기다리고 있기에 신중히 선택해야 하거든요.
- 비건화장품 만들기
- 음식 만들기(피클, 그래놀라 같은)
- 책 읽기
- 책장 정리
- 글쓰기
- 그동안 쓴 글 정리
- 이것저것 끄적인 노트 정리
늘 책 읽기가 우선으로 선택됩니다. 좋아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시간을 할애했을 때 저의 발전에 가장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요. 효율성 집착주의자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돼요. (인생은 어쩌면 고민이라는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맴도는 것 아닐까요?) 그 고민은 책장 앞에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을 보며 ‘무엇을 읽어야 좋을까?’라는 거예요. ‘좋을까’의 기준은 저의 ‘성장에 도움이 되냐’입니다. 영어권 소설과 시를 읽으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음에도 문학 작품의 선택은 자꾸만 미뤄져요. 느낌적 느낌인걸 알지만 공부를 하는 것 같은 빡센 책을 읽어야 더 좋은 것 아냐?라는 압박이 ‘하고 싶음’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들죠. 아, 위에서 ‘정리’ 부분 보셨어요? 정리란 겉보기에 생산적인 활동은 아니잖아요. 물론 그다음 스텝을 위해 꼭 필요함을 알지만 이것 역시 자꾸만 미뤄요. 그러면서 또 정리 안 된 상태를 마주하면 스트레스를 받죠.
일부러 산책을 하지 않는 이상 길을 걸을 때도 최단 속도의 루트를 찾아 가요. 직선의 두 선의 길이보다 대각선이 더 짧죠? 길을 걸을 때도 제 효율성 추구는 한결같기에 짧은 길로 빠르게 걸어갑니다. 유한의 시간 속에 매번 무엇이 최선일까? 늘 ‘이것도, 저것도 해야 하고 알아야 해’라는 강박은 저를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도리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게도 해요. 지금 읽고 있는 이 책 보다 저 책이 더 좋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요. 그래서 책도 하나를 꾸준히 읽지 못하고 이 책 저 책 왔다 갔다 합니다. 근 한 달간 읽은 책들을 보여드릴게요.(궁금하지 않으시다고요? 음... 그래도 써볼게요. 주제가 병렬독서에 대한 고찰이거든요)
1. 정희진의 글쓰기(10%)
2.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5%)
3. 나는 왜 일을 하는가(15%)
4. 문과남자의 과학 공부(10%)
5. minor feelings(10%)
6. 교육의 미래, 컬처 엔지니어링(20%)
7.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40%)
8. 완벽한 날들(5%)
9. 몰입(25%)
10. 코리안티쳐(30%)
11. 너무 한낮의 연애(완독)
12. 자기다움(완독)
13. 저주토끼(완독)
14.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완독)
15. 사랑하는 소년이 얼음 밑에서 살아(완독)
16. 어느 미래에 당신이 없을 것이라고(완독)
17.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부분 재독)
18. 시와 산책(부분 재독)
19. 그 외 도서관에서 읽은 제목을 잊은 몇 권의 책들
욕심이 아닌, 미디어의 영향이 불러온 성인 ADHD일까요? 인터넷에 여러 개의 창을 띄워놓고, 이거 했다 저거 했다 하다 보니 집중하지 못하는 뇌가 된 걸까요? 영상도 2배속으로 보고 중간중간 스킵하며 보는 습관이 빠른 결과를 원하도록 만든 것 일수도요. 그래서 유튜브와 카톡 앱도 핸드폰에서 지웠어요. (책장에서 ‘도둑맞은 집중력’을 꺼내야 하는 순간이 온 것 같네요.) 이유야 어쨌든 모든 책의 내용을 단숨에 흡수하고 싶어요.
마치 이런 거죠. 눈앞에 10개의 도넛이 있지만 저의 위는 최대 2개밖에 소화하지 못해요. 10개를 먹고 싶은 마음에 뚫어져라 도넛들을 쳐다보다 겨우 하나를 골라 먹습니다. 그런데 눈은 남아 있는 도넛들에 향해 있어요. 애인을 떠나보내기 싫은 심정으로요. 다음에 뭘 먹어야 맛있을까? 내가 먹고 있는 게 과연 최고의 맛일까? 먹으면서도 불안하죠.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삶의 목표 때문일까요? 목표를 수정해야 할까요?
1월 챌린지도 (아무도 안 물었지만) 공유해 볼게요.
1.‘인터뷰캠프‘에서 보내는 질문에 매일 답변 기록(feat. 미션캠프)
2. 20일간 영어 원서 읽고 필사와 녹음(feat. 동료영어교사들)
3. 철학 책 읽고 매일 인증(feat. 유림 씨)
4. 16시간 공복 유지(feat. 나 자신)
5. 교사 북클럽
6. 독서모임(feat. 서촌그책방)
7. 글쓰기수업(feat. 임승훈작가)
8. 메타포라(feat. 은유작가)
여러분은 어떠한가요? 경쟁이 심하고, 지나치게 노력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늘 더 해야 하는 강박과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일종의 죄책감에 시달리는 거요. ‘한’과 ‘정’ 다음으로 한국인의 강박을 묘사하는 단어가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겠어요. 브레네 브라운의 <마음 가면>을 읽어야겠어요. ‘수치심, 불안, 강박에 맞서는 용기의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어있거든요. 저도 알아요. 책을 읽는다고 행동이 변하는 건 아니라는 걸요. 이전에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도 읽었지만 마치 글로 연애를 배울 수 없는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배우지는 못했죠.
꽤나 많은 것들을 하고 싶은 제 욕심을 알아요. 그런데 위에서도 언급했듯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늘 하지 못한 일들이 떠오르거나, 집안일을 하느라 조금씩 새어나간 시간들 때문에 너무 늦게 자게 되면 짜증이 또 나고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워지죠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 저란 사람에 대해 써볼게요. 일기가 되어버린 것 같아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지만 다행히 피드백에는 크게 상처받지 않으니 과감 없이 말씀해 주세요. 제 글도, 마음도 동시에 나아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