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쓰기를 시작하며
2020년 2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탓에 전국에 예정되었던 세미나와 모임이 연달아 취소되고 있는 데, 글쓰기 수업이 있는 신문사 교실에는 “팬은 균보다 강하다”라고 믿는 사람들이 가득 모였다. 5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 열렸던 글쓰기 수업의 마지막 날이다. 젊은 작가인 강사는 수강생들의 글쓰기를 독려하는 멋진 말로 강의를 마무리하였고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유로 근처 호프집에서 계획하였던 뒷풀이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나는 철학과 출신이다. 학과를 선택할 때에도 책이 좋아서였고 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책을 항상 끼고 살았었다. 군대에서 그 지리한 시간들을 버티게 해 준 것도 다름아닌 “보안검정필”이란 둥근 도장이 찍힌 책들이었다. 나는 시, 수필, 소설을 가리지 않고 읽었고 내가 언젠가 글쟁이들의 세계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상병 휴가를 나왔을 때에는 반쪽이 되어버린 집에 풀지도 않은 이삿짐 박스들이 가득 들어 차 있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집이 주저앉고 나는 책을 덮었다. 집이 쪼그라들고 가족들이 뿔뿔히 흩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신앙처럼 믿어 온 문학의 치유력과 공감력은 나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중독처럼 놓지 못하던 책을 당장에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십 원 한 닢 벌어주지 못하는 문학책들을 접고 더 강한 사람이 되고 돈을 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처세와 경영서적으로 나의 문자 중독의 대상을 전환하였다. 그렇게 문학의 세계와 멀어져 쓰기도 읽기도 접은 채 이십년이 흘렀다. 다행히 그 사이 나의 경제적인 상황은 많이 좋아졌다. 나는 졸업 후 장학금을 받아 유학을 다녀왔고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취직했다. 한동안 내 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았다. 어찌어찌 재미있게 살았고 나는 어느새 뱃살만큼 묵직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몇 해 전부터 나는 다시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가끔씩 일기처럼 짧은 글들을 긁적이다가 이번에는 아주 본격적으로 써 보겠다고 글쓰기 수업도 들었다. 먹고 살만 해지니 언젠가 한번은 내 책을 쓰고 싶었던 어릴적 바램이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난 때문에 문학을 버렸 듯이 문학이 나를 더 부유하게 해 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주저 않고 다시 문학을 버릴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 한 번 배신했던 자는 두 번도 배신한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작가 지망생이 되기로 했다.
방금 스티븐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작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항상 글을 썼으며 결국 글쓰기로 성공했다. 그의 삶을 통째로 본다면 그의 불운한 가정사와 가난도 모두 그를 훌륭한 작가로 만들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진다. 물론 모두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가난이 위대한 작가의 필요조건일리는 없다. 그들에게 유용한 공통점을 뽑아 낸다면 다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써내려 갔을 뿐이지 않았을까.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던 탓에 나의 글쓰기는 자주 멈추어 선다. 자리에 맞는 단어를 찾지 못하고 멈추어 있으면 내가 과연 계속 써 갈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하지만 다시 가난이 가로막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나도 멈추지 않고 쓸 수 있다면, 줄곧 글쟁이로 살아 온 다른 이들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금아 선생의 ‘수필’처럼 어린 나를 흔들던 감동스런 책 한 권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