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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사람 Apr 19. 2022

모텔 사장님에게 사업 배우기

결국 답은 고객이다


 오늘 이야기할 모텔 사장님은 성실하고 훌륭한 사업가이다. 사장님은 동네 마트로 시작해서 수도권 내 총 4개의 모텔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모두 객실 80개가 넘는 대형 모텔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후배가 관련 회사에 있는데 4개 모텔 모두 지역 매출 1위이다. 그럼 지배인에게 맡기고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쉴 만도 한데 20년 동안 결혼, 입원, 경조사를 제외하고 모텔을 가지 않았던 적은 없다고 했다. 방문해서 매출 현황부터 운영 이슈를 모두 체크하고 업장 별로 필요한 프로젝트들을 일일이 챙긴다. 성실함만 보더라도 훌륭하지만 내가 사장님을 훌륭하다고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폐업을 앞둔 동네 마트 사장에서 첫 번째 모텔 사장이 되기까지 


 사장님은 1999년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아버님이 입원하시면서 동네 작은 마트를 누군가는 그것을 맡아서 해야 했는데 당시 사회적 분위기 상 집안 문제는 장남이 맡아야 했던 시절이라 본인이 책임지기로 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지금까지 생활에 문제가 없었으니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통장을 열어보니 적자였다. 주변에 유사한 마트들이 생기면서 손님을 뺏기고 가격 경쟁도 생겨버려 마진도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부터 사장님은 동네 주민들을 만나고 다녔다. 어차피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앉아서 열심히 판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마트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먼저 선점할 필요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모든 루트를 동원했다. 반상회도 찾아가고 사람이 있는 것 같으면 홍보차 인사도 드리면서 인터뷰도 했다. 처음에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지만 20살도 안된 청년이 노력하는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인사이트를 얻었다. 


  - IMF 이 후로 먹고살기 위해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생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 당시 여성들 대부분 전업 주부였기 때문에 그들이 뛰어든 생업은 시간이 많이 드는 중노동이었다.  

  - 그럼에도 집안 살림은 해야 했다. 그들이 장을 보고 재료 손질하는 것은 중노동의 연장선이었다. 


 사장님은 곧바로 그들을 위한 솔루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배달 서비스였다. 전 날까지 필요한 품목을 전화로 주문하면 다음 날 오후 6시~10시까지 필요한 시간에 제품을 문 앞에 배달해줬다. 대부분 식자재였기 때문에 신선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드라이아이스를 넣어서 같이 배달했다. 두 번째로 재료 손질을 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미리 손질이 가능한 식자재는 손질해서 배달했다. 마트를 찾는 손님들이 줄어들면서 매장 직원들이 하는 일이 없어졌는데 그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할 명분도 여기에서 찾았다. 세 번째로 각 손님 별로 명부에 무엇을 주로 구매하는지 파악한 후에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경우 리마인드 차원에서 메모지에 상품명과 할인 가격을 적어서 같이 배송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직원들이 전화기만 붙잡고 있을 정도로 주문이 폭주했다. 처음에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다른 동네로까지 소문이 나면서 서비스 지역이 확장됐다. 주변 마트들은 이것을 따라서 했지만 사장님이 만든 디테일은 따라 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 배달 서비스만 시행했을 뿐 주부들의 Pain point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배달의 민족, 마켓컬리, 유사 HMR 서비스에 나름 빅데이터에 기반한 CRM 시스템을 구축한 동네의 작은 마트는 지역 내에서 가장 큰 마트로 성장했다.  



모텔의 고급스러움을 포기한 이유는


 사장님은 마트로 큰 성공을 이룬 이후 더 큰 성공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미 가족들이 풍족하게 먹고 살만큼 벌고 있는데 더 큰 욕심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이 생기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같이 사업을 해보자, 여기에 투자하면 좋다 등 수많은 유혹들이 생기니 모두 뿌리치기 어려웠다. 사장님은 여러 가지 유혹 중 모텔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가족들은 말렸지만 당시에는 무조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텔 사업에 투자하고 1년 뒤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갖고 있는 곳이었는데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장사가 되지 않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제안자가 지배인만 놔두면 알아서 돌아간다고 했던 것을 너무 믿어버린 탓이다. 그날 이 후로 대표님은 낮에는 마트에서 일하고 밤에는 모텔에서 일하는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성공했던 이유가 손님들의 이야기를 경청했기 때문인데 그것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날부터 모텔을 찾는 손님들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시간이 되면 주변 모텔을 찾아가 투숙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힘든 생활을 하면서 손님들의 생각과 행동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 해당 지역 손님들은 대부분 젊은 층이라 모텔에서의 소비력이 높지 않다. 

 - 모텔을 찾는 이유는 술 한잔하고 이성친구와 합리적인 비용으로 편하고 즐겁게 쉬다가 가는 것이다.

 - 그런데 우리 모텔은 고급스러운 호텔을 따라 하면서 그들에게 비용과 심리적인 측면에서 부담을 주고 있다. 


  누구나 하는 실수였다. 고급스러움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알고 있지만 고급스럽다는 키워드는 왜인지 놓치고 싶지 않게 된다. 사장님과 주변 모텔 사장님들 모두 고급스러움에 빠져 경쟁하고 있었다. 당시 트렌드가 그렇기도 했지만, 사장님은 모텔업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호텔과 모텔의 중간 지점에 있는 프리미엄 모텔은 본인의 상권에서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장님은 B급 정서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우선 인테리어 컨셉을 파티룸으로 잡고 시각적인 부분을 변경하기로 했다. 마음에 드는 파티룸 사진을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인테리어 업자를 수도 없이 찾아 헤맸다. 당시 B급 정서라는 단어가 없던 시절이라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일본에서 유사한 레퍼런스를 진행해 본 인테리어 업자를 찾아 일을 맡겼다.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와서 모든 공간을 내 멋대로 즐겨도 상관없다는 톤&매너를 중요하게 여겼다. 사장님의 다음 목표는 젊은 층의 손님들이 1차를 제외한 상권 내 모든 서비스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모텔 내에 탑재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른 곳에서 놀지 않고 모텔 안에서 올인원 패키지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만들고자 했다. 1층은 객실을 줄여 저렴한 가격에 친구와 술 한 잔 더 할 수 있는 편의점과 체크아웃 이후 나가면서 커피 한 잔 들고나갈 수 있도록 저가형 커피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당시 PC방과 노래방, 당구장이 젊은 층들의 유흥 문화였기 때문에 객실 별로 컨셉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리고 영화관을 찾는 연인들을 유입시키기 위해 전 객실 최신 영화를 볼 수 있는 서비스를 갖췄다.(현재는 시대 흐름에 맞춰 넷플릭스로 바꿨지만) 7층에는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연인들을 위해 오락 시설도 마련했다. (근데 이건 사장님이 지금도 후회하신다.) 이걸로 해당 상권 사장님들과 마찰이 생겼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리고 지금은 모텔 업계의 퍼스트 무버로써 인정받고 있다. 


 사장님의 두 번째 도전은 그렇게 성공했다. 어떤 기획자보다 뛰어난 기획 능력을 가지고 모텔업에 대해 정의하고 자신만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적용시켰다. 매번 하던 "장사 밖에 할지 몰라"라고 말하는 그가 겸손하다고 느끼면서도 10년 가깝게 사업 기획을 해 온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결국은 뻔하지만 그래도 고객이다


 사업을 하면 고객이란 단어를 지겹게 듣는다. 하지만 그래도 정답은 고객이다. 20년 동안 사장님은 그것을 몸소 보여줬고 현재도 그렇다. 아직도 나를 만나면 매일 같이 고객을 묻는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뭘 좋아하지?" 

 "밖에 나가보니 젊은 친구들 이 가게를 자주 가는 것 같던데 왜 가지?" 

 "젊은 친구들이 요새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간다던데 옥상에 여행지 하나 만들까?


 가끔 사업을 하다 보면 고객보다 돈이 먼저 보일 때가 있다. 내가 고객을 져버리고 욕심을 내면 그렇지 않지만 더 큰돈이 생길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께 전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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