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다르게 보기 시작할 때.

무너진 의지를 다시 세우는 40일

by 진리의 테이블

지난 3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저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문득... 또는 울컥울컥 보고 싶어 지는 마음은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이라면 다들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성실하셨지만,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실패하셨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쯤이었기 때문에 저 역시 그 영향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저는 저의 삶에 드리운 고통이라는 그림자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마음은 점점 차가워지고,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그런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깊은 곳은 차가운 겨울처럼 얼어붙어 누구도 깊이 사랑하지 못하고, 삶의 기쁨도 누리지 못하는 그런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파킨슨에 걸리시고, 매년 그 증상이 깊어졌습니다.

처음에는 걸음걸이가 느려지시고, 종종걸음을 걸으시더니, 나중에는 몸이 아파 끙끙되셨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를 뵈러 집에 왔다가 돌아갈 때였습니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켰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목적지에 맞추고 출발하기 전에 인사를 드리려고 운전석 전동 창문을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창문에서 1m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잘 가라, 밥 잘 챙겨 먹고"라고 인사를 하셨는데, 그때 아버지의 머리가 심하게 좌우로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앞으로 자주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어왔습니다.

그날 가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사업 실패로 가족에게 고통을 안겨준 아버지의 인생에만 매몰되어 있던 내가,

그 고통의 한가운데를 건너오느라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기 시작한 때가 말이죠.

아버지가 겪었을 고독과 고통, 미안함과 아픔이 그의 마음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실패의 그늘만을 바라보던 나의 삶은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었습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절망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 절망이 나를 차가운 세계로 몰아넣었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 서있는 한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보기 시작할 때 그 순간이야말로 그와 내가 상처와 싸매 줌을 통해서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빅터 플랭크는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 가장 깊은 곳까지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내 앞에 닥친 불행만을 바라볼 때 그 불행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그 불행 가운데 있는 '인간', '마음'을 보게 되자, 오히려 그것은 삶이 나에게 준 기회로 보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 살았어도, 그렇게 살갑게 지내지 못했던 나는 약해진 아버지와 마음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툇마루에 앉아 별을 보고, 함께 운동을 하면서 대화를 하고, 스마트폰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를 넣어주며 그의 외로움과 고통 속으로 점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지금,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이었고, 아버지와 함께 나눈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삶(하나님)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이 선물을 놓칠뻔했지만, 나의 마음에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해석'이 떠오르며 그것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빅터 플랭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혹독하고, 처참한 삶이 그에게 주어졌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깊은 진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목표들이 여기서는 철저히 박탈당한다.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뿐이다.


우리 삶에는 많은 고난과 역경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단지 불행으로 해석한다면 실제로 그것은 불행이 돼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다른 해석을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얼마 전 저의 집 공사장에서 한 인부가 2층 비계에서 아래로 떨어져 다친 적이 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에 현장 관리 책임자인 저와 아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마음에서는 즉각적으로 "뭐야? 짜증 나게", "좀 조심 좀 하지", "혹시 돈 뜯어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등등의 부정적이고 비인간적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다친 인부에게 전화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혹시라도 떼를 쓰며 돈을 요구할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를 취해야 해, 그리고 이 사건이 더 좋은 일로 이어질 거야. 삶을 다르게 보렴"


저는 전화를 들어 다친 인부에게 전화했습니다.

"선생님, 다치셨다고 들었습니다. 좀 어떠세요?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충분히 치료받고 말씀 주세요."

그렇게 3번을 다시 걸어 병원에서의 진료 결과를 듣고, 안식을 취하도록 당부했습니다.

그러자 마음 깊은 곳에서 '평안'이 밀려왔습니다.

다친 인부는 저의 세 번째 전화에 진심으로 감사해했습니다.


인부가 다친 상황은 악재였지만, 그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고, 사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따르니 오히려 더 깊은 의미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