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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은 Jul 27. 2020

공간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을까?

네즈 미술관: 브랜드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아름다움을 전한다.

이번 글에서는 네즈박물관에 대해 적어가지만, 네즈박물에 대한 세세한 묘사는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네즈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브랜드가 도심 속에 어떻게 활력을 전하는지에만 집중한다. 네즈 박물관과 아름다움과의 상관관계는 다소 의문스러울 수 있다. 그렇지만 네즈 박물관이라는 장소. 어찌 보면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네즈 박물관이 도시 속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전한다는 '쉼'을 구체화한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네즈박물관 역시 브랜드가 아름다움을 전하는 방식에 충분히 부합한 장소다.

오모테산도 거리.


깔끔한 거리와 상점들. 차분하면서도 적절히 긴장감이 있는 오모테산도 거리. 겉은 트렌디함을 품고 있으나, 그 안의 고요함은 긴자와는 사뭇 다르다. 이곳에 위치한 네즈미술관은 오모테산도가 지향하는 공간을 그대로 반영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긴자는 수많은 빌딩과 수많은 상점가로 가드ㅡㄱ하다.
이와 다르게 오모테산도는 빌딩과 골목길사이에서도 평온함이 있다.


네즈 미술관은 도부 철도 회장을 역임 한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네즈 카이치(1860-1940)가 지은 박물관이다. 서울 괴 비교하면 리움과 비슷하다고 보면 편하다.(실제 오모테산도는 한남동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네즈 미술관은 총 구마 겐고가 설계한 미술관과 네즈 카페, 정원/ 이렇게 3곳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 곳 모두 유명하다. 현재  이 곳에서는 현대 일본 및 동아시아 예술품을 보존 및 전시하고 있다.

https://youtu.be/lkweBFyArLQ

네즈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중 하나인 네즈카페

교토는 어디서든지 조금만 고개를 들어 보면 산자락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도 정서를 품은 도시다. 여기에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일본 정원, 신사, 문화재, 산과 강이 일본 특유의 정서를 붙잡고 있다. 반면에 도쿄는 이런게 적다. 교토와 다르게 도쿄는 정원, 신사, 문화재, 산과 강이 해야 할 역할들 수많은 가게, 브랜드, 건물들이 맡고 있다. 물론 신주쿠 공원, 고쿄와 히가시고엔, 메이지신궁, 야스쿠니 신사, 히비야 공원,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등 녹지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공간들이 도쿄에 정서를 불어넣기보다는 환기시키는 역할에 더 가깝다.


구마 겐고의 

약한 건축이 만들어는 차분함.

빛과 그림자에 따라 박물관 내부가 다채롭게 변한다.

구마 겐고는 도쿄 중심부인 오모테산도 지역에 정원과 하나가 된 환경과 박물관을 만들고자 했다. 콘크리트 상자로 닫힌 박물관이 아니다. 통유리와 문을 통 정원과 하나가 된 공간을 만들어 정원, 건축, 예술 작품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게 하고자 했다.


구마 겐고는 여타 일본 건축가들과 다르게 일본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건축을 했다. 예를 들어 아시노 돌 미술관은 창고로 쓰던 공간을 오로지 지역에서 나오는 돌로만 들었다. 도쿄대라는 일본 건축 중심에서 건축을 배웠지만, 지방을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건축재료와 사람관의 관계가 공간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경험으로 터득했다. 사람들 중시하고 품고자 하는 약한 건축을 지향한 그의 스타일은 네즈미술관에도 차분히 스며들어 있다.

긴자만큼은 아니지만 오모테산도의 번잡함도 네즈박물관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진다.

네즈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회랑. 이는 은각사와 유사하다. 직선의 대나무와 대칭을 이루는 돌. 정결함을 의미하는 츠보니아. 이는 오모테산도의 소음을 흡수하기 위함이다. 네즈 박물관 자체는 일본 특유의 직선이 두드러진다. 나무와 철을 골고루 배치해 직선이 가진 팽팽함을 차분하게 풀어냈다. 유리창을 통해 빛이 충분하게 들어오도록 만들어 채광에 따라 박물관 내부가 수시로 변하도록 했다.

네즈 박물관 흐르는 공간감은 빛이 만들어는 그늘의 아름다움.

1,2층을 걷다 보면 다양한 채광으로 인해 공간이 다양하게 변하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양한 채광은 세밀한 밀도를 가진 그림자를 만든다. 이 그림자는 미술관 안에 긴장감, 온유함, 차분함을 담아낸다. 전시실로 입구에는 빛에 따라 그림자가 천천히 생기도록 유도해 어둠이 가진 아름다움도 묘사했다. 이 부분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강조한 '그림자가 가진 아름다움'을 형상화했다.



감성을 

충전시키는 정원.



왼쪽은 네즈박물관, 오른쪽은 은각사 지도.

네즈 박물관의 안내지도를 보면 은각사와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네즈미술관과 은각사가 유독 맥락이 잘 맞는 이유는 은각사가 사찰이 아닌 별장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네즈 박물관이 네즈 카이치로의 별장은 아니다. 하지만 사립 박물관은 개인의 정신적 별장으로 충분히 확장해 해석이 가능하기에 은각사와 네즈박물관은 맥락면에 비슷하다. 다만 네즈박물관 정원은 이 은각사와 동선 반대다. 은각사는 위에서 아래로 걷는 구조이지만 네즈박물관 정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다.

네즈박물관정원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구조다.

네즈박물관 정원은 회유식 정원이면서도 그 안에는 노지 정원, 츠보니아 같은 다른 일본 정원 양식 골고루 녹아들어 가 있다. 당연히 일본 정원에서 중요시하는 돌 배치도 훌륭하다. 이곳도 '사쿠테이키'에서 적힌 '좋은 자연풍경이 있다면 얼마든지 가지고 오라'는 말에 충실하다. 내 경험으로 판단해보자면 네즈박물관은 가쓰라 리큐, 남선사 천수암. 특히 정원 동선은 남선사 천수암과 무척 비슷했다.

정원의시작인 돌배치는 탄탄하면서도 좋다.

네즈미술관 정원은 네즈 카이치로의 취향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네즈미술관을 포함해 정원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공원은 도쿄 거주민에게 '쉼'을 전하는 공원으로서 그 범위가 확장된다. 일본 정원은 '편집된 자연'을 통해 '자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파고 들어가지만, 네즈 박물관 정원 그 보다는 '도시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자연은 도시인에게 어떤 쉼을 제시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공간에 좀 더 가깝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이 존재한나는 네즈박물관 공원.

만약 도쿄가 아닌 교토였다면, 여타 다른 정원. 가쓰라 리큐처럼 그저 정원 안에서 자연을 보는 독립적인 공간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정원구조'보다는 공간 그 자체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즉, 네즈박물관이라는 '브랜드'가 만든 공간이 '오모테산도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아름다움을 전하는가?'다. 동시에 이곳이 오모테산도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공간이 어떠한 '확장성'을 가졌는가이다.

이와 비슷한 공간이 한 곳 더 있다. 바로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 네즈 박물관은 네즈 카이치로 개인 사유지이기에 오모테산도와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 긴장감은 '입장료'다. 보이지 않는 벽인 셈이다. 네즈 박물관에 들어가 내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도시안에서 자연은 개방도에 따라서 사람들정서에 큰 영향은 준다.

https://brunch.co.kr/@freeoos/382

반면에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은 그렇지 않다.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은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자, 누구나 잔디밭에 누워서 쉴 수 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도, 혼자서 기타 연주를 한다고 한들 아무도 이를을 신경 쓰지 않는다. 사방으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빌딩 숲 사이 공원은 도시인에게 가장 부족한 느긋함을 건넨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은 그 주변 가게들에게 정서를 나눈다. 대표적인 곳이 미나미 이케부쿠로 공원 입구 앞에 위치한 블루보틀 이케쿠부로점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브런치 글에 적어놓았기에 링크를 참고하기를 권한다.)

도쿄와 다르게 교토는 이같은 풍경과 정서를 쉽게 느낄 수 있다.반면에 도쿄 히비야공원같은 경우 정서를 전하기보다는 환기에 더 가깝다.

교토는 방사형 도시에 철저히 교토 정서와 폐쇄성으로 움직인다. 이와 다르게 도쿄는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공간으로만 계속해서 채우고 확장하려고 한다. 겉으로는 굉장히 화려하지만 도쿄는 면밀히 살펴보면 초조하다. 교토같이 정서를 가지지도 않았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깡통 같은 도시로 변하고 있다. 고층빌딩과 기존 건물들을 연결한다. 건물을 거점 삼아 도시재생을 하고,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고자 한다. 하지만만 그 연결은 물리적인 연결에 그친다.

도시에서 아름다움은 건물과 건물속에 자리한 브랜드가 중심이다.

도시에서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건 자연이 아니다. 사람이다. 도시 자체가 사람이 모여있는 집합체이기에, 도시기획이 사람과 공간 간 관계로 귀결되는 걸 당연한 일이다. 도시에서 사람은 내력이 될 수도 외력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이 내력이 되거나 외력이 된다면 사람은 철저히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도시에 공원이나 자연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이 사람답게 그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도시 속에 사람은 너무 많고 그 수를 측정할 수 없다. 설령 데이터 분석을 한다고 해도 그 결과는 범주화된 개인일 뿐이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연결은 온라인을 통한 노매드에 가깝다. 연결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건물, 오프라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도쿄. 겉은 화려하나 오히려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는 현실이다. 특히 자국 통신망을 만드는 기업 자체가 없다는 점은 일본이 얼마나 부실한 나라로 전락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례다.

네즈박물관은 빛에 따라서 공간이 가진 성격이 많게는 5구간으로 나뉜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어 하지만, 이미 그 계획은 틀어진 지 오래다. 오히려 도쿄 올림픽에서 선보이고자 하는 5G 인프라는 삼성전자가 담당하고 있으며(삼성은 5G 장비를 KDDI에 판매), 카드결제는 현대카드, 8K 방송은 LG가 담당할 예정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가 이제 마주하는 도쿄는 아시아에서 한때 주목받았고 이제는 아시아 중심에서 점차 밀려나가 쇠락하고 있는 면이다. 물론 도쿄라는 도시가 어느 날 갑자기 쇠락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과거 도쿄가 누린 그 화려한 과 위상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 사실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모호하지 않다. 매우 추제적이면서도 현실에 뿌리는 둔다. 출처: 오설록 홈페이지.

브랜드가 아름다움을 전한다는 말은 상당히 모호하다. 그러나 브랜드가 예술과 분명하게 다른 점은 '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작점'이 일상이라는 점이다. 파타고니아처럼 세상을 비판하는 문제의식을 자신들 상품에 그대로 반영하던가, 운동 중 땀 흡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한 언더아머. 한국의 전통 차문화를 보존하고 정립하는 일념에서 시작한 오설록. 모든 브랜드는 각자마다 현실에 밑바탕을 두기에 무엇인가 '해결'하거나 '구현'하는 일에 집중한다. 남들이 알아듣기 힘든 애매모호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전하는 아름다움은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정말 맵다'는 추상적이다. 하지만 불닭볶음면을 내밀며 '정말 매워'하면 구체적인 내용이 되니까.


브랜드는 도시 안에서 도시가 사람들을 이끄는 강한 동력이다. 뭐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집 앞 슈퍼, 편의점 빵가게, 화장품 로드샵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다. 도시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브랜드들. 브랜드들이 전하는 아름다움을 물건을 통해 사는 건 어쩔 수 없다. 애플, 삼성, 아마존, 쿠팡, 마켓컬리 모두 브랜드다.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형태는 눈에 보이는 무언가다. 


물론 아마존, 쿠팡, 마켓 컬리 같은 경우 내 집 앞에 배송된 상품이지만, 우리가 그걸 '아마존'에서 샀다고 이야기하는 건 그곳에서 모든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도 가족들도 '쿠팡 가서 사, 집 근처 이마트 가서 사'라고 이야기한다. 중요한 건 어떤 브랜드를 이용하느냐? 그게 아니다. 과거와 다르게 브랜드는 이제 '명사' 그 자체로 사람과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동시에 브랜드와 브랜드가 촘촘히 연결되머 도시에서 부족한 무언가를 계속 채운다.

공간,서비스에 대한 경험은 브랜드가 제시한다. 

그렇다고 브랜드가 제시하는 경험을 꼭 물건으로만 한정할 수도 없다. 공간 그 자체인 경우도 있다. 아름다움을 한 단어로 이야기할 수 없듯, 브랜드가 전하는 아름다움 역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단지 브랜드는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에 아름답라는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네즈박물관은 그 존재와 만든 이의 의도 자체가 아름다움을 전하는 매개체가 되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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