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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18. 2021

너희가 반곱슬을 아느냐

ft. 드렁큰 머리숱


 반곱슬에 머리숱이 많다. 미용실에 파마하러 가면 어느 곳을 가든 그곳 원장님에게 같은 말을 듣는다.

“어유~ 머리숱 엄청 많다. 파마약 많이 들어가서 돈 더 받아야겠네.”   

   

아래쪽으로 갈수록 머리카락이 붕 뜨는데, 비가 오는 날은 배로 부풀고 꼬불꼬불해진다. 마치 머리카락이 술에 취한 듯 제멋대로 뻗어나간다.

나도 긴 생머리 찰랑찰랑하며 돌아다니고 싶다. 전지현이 20대였던 시절 TV 광고에서 "엘라*틴 했어요."라며 자신감 있게 머리를 휘날리던 것처럼(윤기 나던 머리카락이 촤르륵 떨어지던 게 잊히지 않는다).

다른 건 닮을 순 없지만, 머리카락쯤은 전지현을 닮을 수 있을까 하여 매직을 해보았다. 얼굴이 빈곤해 보인다. 다시 웨이브 파마를 했다. 2~3달은 괜찮은 거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스스해진다.


이러니 비싼 돈 주고 파마를 해봤자 머리끈으로 질끈 묶고 다닌다. 그러다 머리를 감고 시간이 없어 덜 말렸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산발한 채로 외출을 할 때도 있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비교적 둔감한 편이라 다행이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편하게 하고 다니는 편이다.


그런데 남자 친구는 불편했나 보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난 어느 날, 집으로 가는 길에 그가 말한다.

-  있잖아. 이제 보니 너 가수 닮았어.

-  가수?

‘누구지? 나 연예인 닮은 거야? 그런 거야?’ 마구 기대감에 부풀어 씰룩이는 입가를 내리고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  누구?

그가 내 귓가에 바짝 다가와 속삭인다.

-  김종서

-  뭐? 크크 크큭!!!!

당황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아, 내 머리가 자유롭고 거친 로커처럼 보였구나. 헤드뱅잉을 한번 보여줘야 하나.


20대의 기운 넘치던 나의 머리는 아이 둘을 낳고 머리숱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미용실에 가면 숱이 많다며 돈을 더 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부스스함은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이런 나의 머리를 보고는 구 남친이자 현 남편인 그가 말한다.

-  머리를 좀 묶는 게 어때?

-  머리 덜 말랐어. 아직 묶으면 안 돼.

-  근데 진짜 예전보다 어깨가 많이 넓어졌다. 나이 먹으면서 어깨도 자랐나 봐.

-  그런가.

-  응. 내 어깨랑 비슷한 거 같은데. 옛날엔 어좁이였는데.

그러더니 갑자기 바닥에 굴러다니던 아이의 색연필을 집어 들고는 나를 향해 휘두른다.

-  익스펙토 패트로늄!

-  익스.... 뭐?

뭐하냐고 황당해 쳐다보니 말한다.

-  아, 해리포터에 나오는 해그리드인 줄 알고.

-  크크크큭!

해그리드라면 덩치가 산만하고 머리카락과 수염이 덥수룩하다 못해 폭발 직전인 것처럼 보이는 아저씨 말하는 거니...?


생머리인 네가 반곱슬의 비애를 아느냐!  

반곱슬도 장점이 있다. 머리 손질만 잘한다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스타일 연출이 가능하다는 거다. 단, 손질을 잘했을 때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DNA에는 '손재주'가 들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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