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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23. 2021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

죽기 전에 꼭 해볼 일들 – 데인 셔우드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에게 살아있을 이유를 준다.
악어 입을 두 손으로 벌려본다.
2인용 자전거를 탄다.
 인도 갠지스 강에서 목욕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누군가의 발을 씻어준다.
달빛 비치는 들판에서 발가벗고 누워 있는다.
소가 송아지를 낳는 장면을 구경한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를 보낸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사람에게 열 장의 엽서를 보낸다.
다른 사람이 이기게 해 준다.
아무 날도 아닌데 아무 이유 없이 친구에게 꽃을 보낸다.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른다.     


대학생 때 본 시가 좋아 예쁜 메모지에 필사하여 책상 앞에 붙였다. 죽기 전에 모두 해보고 싶었다. 앞으로 살면서 실천한 것들은 하나씩 지워내기로 했다.


처음 포부와는 다르게, 15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까지 이루어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바쁘다는 핑계로 혼자 갑자기 여행을 떠나지 못했지만, 사실은 홀로 낯선 곳으로 떠날 용기가 없었으며. 누군가에게 살아있을 이유를 주는 건 내가 죽기 전에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 두 팔을 걸고 악어 입을 두 손으로 벌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며, 2인용 자전거보다는 혼자 타는 걸 좋아한다. 인도에 갈지도 의문이지만, 갠지스 강에 손가락 까지는 담글 수 있어도 목욕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나무를 심는 건 생각보다 실천하기 어려울 것 같고, 아이들의 발은 매일 씻겨 주고 있다. 발가벗고 들판에 누워 있는 건 벌레가 몸에 붙을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고, 소가 송아지를 낳는 건 TV로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는 보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두 번의 출산을 경험했으므로 굳이 안 봐도 알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지하철에서 낯선 사람에게 미소 짓는 건 어릴 때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항상 미소를 지었기 때문에 이미 이루어진 일이다. 내가 미소를 지으면 항상 상대 도 미소를 지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한 사람에게 열 장의 엽서를 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단 열 번이라도 꾸준함 드는 노력은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이기에 해주는 것은 가끔 하고 있다. 아이들과 게임을 할 때 말이다. 아 이유 없이 친구에게 꽃을 보내는 것은 어렵다. 나 자신에게도 꽃을 선물하기 어려우니.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는 것은 몇 번 해봤다. 4번의 경험이 있는데, 3번은 선배와 친구의 결혼식이었고, 나머지 한 번은 나의 결혼식에서 내가 축가를 불렀다. 남들은 신부가 드레스 입고 예쁘게 있어야지 축가를 부른다고 의아해했지만, 나는 내 결혼식을 축하하고 싶어 축가를 준비했다. 반응은 좋았다. 무대에 서고 싶은 본능을 감출 수 없었나 보다.

축가를 부른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는 의미로 온 마음을 다해 축가를 불러주었다. 나의 축복이 당신들의 앞날에 작은 기쁨이 되기를 바랐다. 나의 작은 재능으로 타인의 기억에 큰 기쁨을 남긴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죽기 전에 꼭 해 볼 일들 중 하나임은 틀림이 없다.

아직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일부는 약간 수정을 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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