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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25. 2021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배꼽시계뿐


-  버스 타고 집으로 갈래.

-  왜? 엄마랑 여기까지 왔는데, 벌써 간다고?

-  그냥. 집에 가고 싶어 졌어.

-  뭐 마음 안 좋은 일 있었어?

-  아니. 버스 타고 갈래. 버스 가버리면 어떻게 해.

-  버스는 계속 오니까 걱정 말고. 정말 갈 거야? 왜 그러는지 말 안 해줄 거야?

-  그냥 가고 싶어.

시내에 나온 지 채 20분도 되지 않아 딸아이가 되돌아가자고 했다.

 


    

아주 오랜만에 아이와 둘이서만 외출을 했다. 그간 4살 어린 동생에게 사랑을 다 빼앗긴다고 생각했는지 부쩍 짜증이 늘어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날의 계획은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 고장 난 내 안경을 수리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서점과 오락실에 들렀다가 카페에 가는 거였다.

아이가 버스를 타는 거에 기대를 많이 했던지라 외출하기로 했던 아침 일찍부터 들떠서 언제 출발하는지 계속 물어댔다. 외출 준비를 하고 아빠와 동생에게 인사를 하고는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마을버스에 타 창문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고 밖을 구경하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진작에 나오지 않은 게 미안할 정도였다.


시내에 도착해 우선 안경을 수리하러 갔다. 로데오 거리를 가로질러 안경점까지 걸어가는데 대략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길을 걷는 내내 아이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찾는 듯했다. 안경 수리를 금세 마치고 밖으로 나와 물었다.

-  이제 어디로 갈까?

-  내가 아까 오다가 ‘게임 천국’을 봤어.

-  게임 천국? 그게 뭐야?

-  게임하는데겠지~

-  거기 가고 싶어?

-  응!


내가 아는 한 시내에 오락실은 없는데. 일단 왔던 길로 되돌아가며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으로 복작이는 길을 걸으며 ‘게임 천국’이라는 간판은 발견하지 못했다.

-  게임 천국 맞아?

-  응. 맞는데. 내가 봤는데.

-  혹시 김밥천국을 잘못 본거 아니고?

-  아니야~!


아무리 찾아보아도 게임천국은 보이지 않아, 대안을 제시했다.

-  백화점에 가면 오락실 있잖아. 그리로 가자.

-  싫어. 집에 갈래.

-  뭐? 집에 간다고? 우리 여기 온 지 20분도 안 됐는데.

당황해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예쁜 액세서리와 인형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  우리 저기 가볼까?

-  아니. 버스 타러 가자.


이런...! 왜 그러는 거야~ 이유를 물어도 말을 안 해주고 집에 간다고만 한다.

순간 남편과 연애할 때가 생각났다. 서운한 일이 있으면 말을 하면 되는데, 그때는 왜인지 표현하기가 힘들어 지금의 이 아이처럼 속마음을 숨기기만 했었다. 그때 남편의 심정이 어땠을지 이해가 되면서 미안해졌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아이는 말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  우리 돈가스 먹으러 갈까?

-  아니야. 집에 갈래. 다음에 아빠랑 다 같이 또 가자.

-  엄마는 네가 마음이 안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서 속상해.

-  아니야~

-  말 안 하면 몰라. 말을 해줘야 알지. 혹시 게임천국 못 찾아서 그래?

-..................... 응.

내가 눈치를 못 채서 미안하구나. 그렇지만 엄마라고 네 마음을 다 알 수는 없는데.   



  

내 마음을 타인이 완전히 알아주기란 어렵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때가 있는데, 남이 어떻게 알까.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말로 표현하는 거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표현하는 것 자체가 쉽지는 않다. 감정을 어디까지 드러내도 되는지, 솔직하게 내보였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어떨지, 혹여나 우습게 보이지는 않을지 등의 고민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감정을 내보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함을 아이를 낳고서야 깨달았다. 아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인이 원하는 것을 바로 말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너의 마음을 말로 표현해야 상대방이 알 수 있다고, 말로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해주지만, 소용이 없다. 

하긴, 나도 아직 말로 표현하는 게 어려운데 아이도 마찬가지 아닐까 짐작해본다. 


아이가 어릴 때야 표정에서 생각과 마음이 투명하게 보여 큰 문제가 없지만, 커갈수록 생각과 마음에 옷을 한 겹씩 겹쳐 입어 점점 보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아이도 나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나도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을 터득해 연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화가 중요한데,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말을 건네야 한다. 애정이 담긴 말을. 오늘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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