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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26. 2021

갈대 같은 바람들

건강하게만 자라도 되는 거 맞나요


 9월과 10월은 내 평생 신비한 경험이었던 출산을 한 달이자, 사랑하는 두 아이가 태어난 달이다. 

아이들 출생일 하루 전이면 매년 같은 생각을 한다. 호랑이(첫째 태명)는 새벽 5시 30분쯤부터 진통이 시작됐었는데, 아이가 나올 때 배 속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이 나자마자 나왔었지. 기린이(둘째 태명)는 골격이 커서 나올 때 어깨에서 걸려서 힘들었는데. 아, 조금 있으면 우리 아이가 세상 빛을 처음 본 시간이구나.


열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을 배 속에 품고 있으며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건강하게만 나와다오.’

혹여나 건강하지 않다면 나의 남아있는 수명 일부를 떼어주더라도 아이가 건강했으면 했다.


감사하게도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 주었다. 그다음의 바람도 변함없이 같았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아이가 아플 때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었고, 음식을 먹을 때면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남은 것은 내가 먹었다. 아이와 둘이 집에 있을 때 창틀의 틈을 통해 들어온 벌레나 곤충이 보이면 용기 내 잡아 밖으로 내보냈다. 평소였으면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을 텐데 말이다.


아이가 유아기 시절을 무사히 보낸 후 아동기로 접어들었을 때, 나의 바람에는 변화가 일었다.

‘공부는 평균 이상은 해야 할 텐데.’ 아니, 솔직한 말로 평균 이상이라기보다는 잘했으면 했다. 잘할수록 좋은 건 맞으니까.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연산 문제집은 매일 풀어야 하는 거야. 오늘 영어 듣기 했니? 놀이터에서 그만큼 놀았으면 됐지 얼마나 놀려고 해. 아마 전교에서 네가 제일 많이 놀걸?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던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리고,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거대하게 몸을 부풀렸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어할 때면, ‘그래. 네 공부지. 내 공부냐.’ 하면서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말만 그렇지 진심이 아니다. ‘너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해’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내 생각대로 아이가 움직여 주기를 바란다.


이러한 바람들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그 모습을 시시각각 변화시킬 거다. 좋은 곳으로 취업했으면, 좋은 배우자를 만났으면..... 이러한 바람들로 바뀌지 않을까. 그러다 생각해 본다.

‘나나 잘하자.’ 

나도 내 인생 그리 알차고 보람 있게 사는 게 아닌데, 아이의 인생을 걱정해 봤자 무에 소용이 있을까. 아이는 그만의 인생이 있으니, 나는 나의 인생에 조금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애정 어린 마음으로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만 외치면 충분할 것 같다. 그 응원이 아이에게 요술 주머니가 되어, 분명 필요할 때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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