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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인간 Oct 27. 2021

몽당연필

 

 새 연필을 처음 깎아내는 일은 기분 좋게 두근대는 설렘을 줍니다. 끝이 뾰족하게 깎인 기다란 연필로 종이 위에 글씨를 써 내려가면 사각거리는 촉감과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줍니다. 


연필은 나무와 흑연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연필깎이보다 칼로 연필을 깎을 때, 그것의 성분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깎아지는 나무의 질감과 흑연이 가루가 되어 까맣게 내려앉는 촉감에 솜씨 좋은 이발사가 된 기분입니다. 


연필만 있으면 무엇이든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글도 쓸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으니 생각을 나타내는 데엔 이만한 만능 재료가 없는 셈이지요. 


잃어버리지 않고 착실하게 써나간다면, 어느새 길이가 짧아진 연필을 마주하게 됩니다. 짧아진 길이를 보며 나의 생각들이 닳아버린 연필의 길이만큼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면, 무언가 대단한 일을 이루어낸 것만 같습니다. 사실 누군가와 통화를 할 때면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주위의 아무 종이에나 연필로 의미 없는 낙서를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했다고 해도 말이죠.


몽당연필이 되면 더는 손에 편히 잡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버리지는 않습니다. 알루미늄으로 된 몽당연필 홀더에 끼우거나 아이가 다 써버린 색연필에 끼워서 연필의 생명을 연장합니다. 그렇게 생명 연장된 연필은 제 몫을 다하며 생각보다 꽤 오래 사각거립니다. 그리고는 칼로 더는 깎을 수 없는 길이가 되었을 때 이별을 고합니다. 그런데 신기하죠. 그 길이가 되어도 흑연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고령의 노인 모습과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 젊을 때보다 기력이 달리고 판단능력도 떨어져 사회활동을 하지 못할 거로 생각하지만, 도움이 되는 보조장치가 있다면 어느 정도의 일은 가능합니다. 심지어 치매 노인들이 운영하는 카페도 있으니까요. 수명이 다해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그들의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생명이 다해 그 능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학창 시절 몽당연필을 쓰는 나를 신기해하던 친구들과 지금도 나의 책상 세 번째 서랍에 들어있는 한 움큼의 몽당연필을 보며 버리라고 말하는 남편이 있지만, 나는 나의 몽당연필을 좋아합니다. 분명 더 쓸 수 있는데,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도 색연필에 끼워진 연필로 종이 위에 아무 생각들을 적어나갑니다. 역시 처음과 같이 사각사각 잘 써집니다. 이 촉감과 소리는 연필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도 변함이 없을 겁니다. 나의 능력도 그러길 바랍니다.

 

생각해보니 나의 능력이라면, 1픽셀의 어긋남을 찾아내는 매의 눈이 있다는 것과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유쾌한 헛소리를 하는 것이 있는데. 노인이 되어도 유지돼도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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