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미국소 시위에 대한 토론을 추억하며
나는 정파적 사고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가치에 따라 살아가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선 시민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공론장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진중권 교수와 마이클 샌델의 저서들이 이러한 신념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공론장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규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종교적 근본주의나 극단주의적 이데올로기/문화는 배제할 것
(2) 욕설과 인신공격은 금지할 것
(3) 자신의 태생적 유리함과 행운을 인지할 것
내 주변에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도, 보수적 성향의 사람도 있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원칙만 지켜진다면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확신은 고교 시절 경험한 한 토론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던 시기였다. 나는 특정 정파와 무관하게, 당시의 담론이 여러 음모론과 과장된 정보에 기대고 있다고 판단했었다. 일부 방송사는 다우너 소를 광우병으로 오보했고, 유명 만화가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즉각 광우병에 걸릴 것처럼 묘사했다. 생리대 등 여성용품에 미국산 원료가 들어가며, 따라서 이를 사용하면 광우병에 걸리게 된다는 주장 또한,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과 의견이 혼재된 정보, 절반의 진실과 절반의 허위가 만들어내는 ‘대안적 사실’은 결국 팩트가 아니다. 아무리 선한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 기반이 허위나 날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마땅히 재고해야 한다.
그때 한 교사가 학생들에게 관련 주제로 토론을 제안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교사가 중재자가 아니라 사실상 한쪽 입장의 대변인처럼 행동했다는 점이다. 나는 유일하게 수입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한 시간 동안 학생들의 포화같은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학생들이야 그럴 수 있지만, 교사 역시 이를 제지하기보다 거들었다. 공론장이 갖추어야 할 공정성과 균형이 결여된 사건이었다.
이 경험 이후,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우선 경청하는 태도를 갖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가령 역사적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기본적 권리를 부정하거나, 자신이 가진 구조적 유리함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경우다. 이는 공론장의 기본적인 규칙을 약화하는 것이며, 나아가 공론장의 가능성 자체가 흔들린다.
공론장은 의견의 일치를 강요하는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점이 존중 속에서 충돌할 수 있는 장소다. 그 규칙이 지켜질 때, 비로소 우리는 갈등을 넘어 성찰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