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실 전 문체부 차관「세계화시대에서의 한국의 문화정체성 향상 방안」
2001년, 한국문화정책개발원에서 발간된 「문화정책논총」에 실린 김장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논문 발표 당시 문화관광부 국장)의 글 「세계화시대에서의 한국의 문화정체성 향상 방안」을 읽었다.
논문의 서두는 간결하지만 상징적으로 시작한다.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다.”
이 문장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SNS와 디지털 플랫폼의 확산으로 사회·문화·경제 전반의 경계가 무너진 오늘날, ‘세계화’라는 단어는 오히려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만큼 세계는 상호 연관성이 긴밀해졌고, 문화의 흐름은 국가의 울타리를 넘나들고 있다.
김 전 차관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문화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한 세 가지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본고의 ①편에서는 그 내용을 요약하고, 이어질 ②편에서 그 현대적 함의를 고찰하고자 한다.
1. 한국 문화정체성 확보를 위한 정책 방향과 분야별 주요 정책
문화관광부는 1998년 ‘21세기 문화대국 건설’을 목표로 새로운 문화정책을 발표하였다. 이 정책은 외래문화를 배척하기보다 능동적·주도적으로 타문화를 수용하는 ‘열린 문화정책’을 표방했다. 주요 정책 목표는 다음과 같다.
순수예술 및 전통문화의 보존·발전: 공연장 입장료 부가세 폐지, 전문예술법인·단체 세제 혜택 확대.
문화산업 진흥: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1998)」 발표, 산업 집적화·유통현대화·정보네트워크 구축·전문인력 양성·창업 및 기술개발 지원·해외진출 강화.
세제 개선: 게임기(30%), 방송기자재(15%) 특별소비세 폐지, 전자출판물 부가세 면제 등.
문화산업 기반 조성: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게임종합지원센터, 영상벤처센터, 애니메이션 아카데미 설립.
해외 홍보 강화: 아리랑TV 해외 위성방송 개시.
2. 제도적 장치
한국문화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병행되었다.
외래문화의 유입 시 심의제도 운영: 국어심의위원회, 영상물등급위원회, 방송위원회,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등.
문화정체성 보호 규제: 스크린쿼터 제도 유지(한·미 FTA 협상 당시 폐지 압력에 맞서 국내 영화계의 농성으로 지켜냄).
미디어 및 출판 규제: 공중파·케이블방송·출판·인쇄 분야의 일정한 규제 유지.
문화유산 보존 강화: 문화재 예산을 1999년 1,620억 원에서 2000년 2,462억 원으로 52% 증액, 문화상징 및 인물 홍보사업 추진.
3. 향후 문화정체성 제고를 위한 정책 구상
김 전 차관은 한국 문화정책의 문제점으로 사회적 인식 부족과 전략적 접근의 미비를 지적한다.
한국 문화가 전통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서구화가 얼마나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자기성찰의 결여를 우려하며, 다음과 같은 보완 방향을 제시한다.
정신문화 및 무형문화재 보호 강화: 유형문화 위주의 보존 정책에서 벗어나 무형문화예산 확대.
문화교육 확대: 암기식 입시교육을 탈피하고 창의성을 기를 수 있는 문화교육 도입.
문화정보 인프라 구축: 세대·지역·관심분야를 초월한 문화소비자 및 생산자 간 접근성(accessibility) 향상.
민간 NGO 및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강화: 정부 정책을 감시·비판·조언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참여 확대.
전략적 협상 시나리오 구축: 국제 협상에서 목표·수단·단계를 명확히 설정한 전략 필요.
매스미디어의 역할: 대중매체를 통한 문화의식 향상과 문화산업 진흥 촉진.
유통구조의 선진화: 체인화·대형화·유통망 현대화를 통해 콘텐츠 경쟁력 제고.
한국문화의 해외 발신력 강화: 문학 번역 전문가 양성, 해외문화원 증설, 해외 한국학 기관 지원, 교환교수·교환학생 제도 확충 등을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
요컨대, 이 논문은 세계화 속에서 한국이 ‘문화의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의 생산자이자 발신자’로 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20여 년 전 제시된 정책이지만, 그 방향성과 문제의식은 오늘날의 이른바 “K-컬처”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욱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