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청장 정문헌의 저서 『인간은 노동해야 하는가』를 읽고
종로구청장 정문헌의 저서 『인간은 노동해야 하는가』에 따르면, 수렵·채취 사회에서 노동은 인간 삶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인류는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았으며, 마셜 살린스는 이를 ‘원시적 풍요사회’라 명명했습니다. 그는 이들의 노동이 “생각보다 짧고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분석하며, 그 후의 시간은 공동체적 여가로 채워졌다고 말합니다. 즉, 노동은 단순한 생존의 수단을 넘어 공동체적 유대와 의미를 지닌 활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이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일까요? 인류가 농경과 목축으로 진화하면서 노동의 성격은 크게 변했습니다. 특히 산업혁명 시기에 이르러 노동은 경제적 관점으로 환원되며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P. 톰슨은 그의 명저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산업혁명 전후 영국 노동자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조명합니다. 자율적이던 농민들은 공장체제에 편입되며, 전통적 삶의 리듬을 상실했습니다. 노동은 더 이상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도래할 AGI(범용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러한 질서가 다시 한 번 근본적으로 뒤흔들릴 것입니다. AI는 인간의 인지적 기능뿐 아니라, 공감·창의성·호기심과 같은 인간 고유의 능력까지 습득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며, 인간은 다시금 ‘노동이 삶의 중심이 아니었던’ 원시 수렵·채취 사회와 유사한 국면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즉, ‘일이 소멸된 사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명사적 전환기에, 정부·NGO·시민사회 등은 단순히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려는 노력을 포함한 단선적 대응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 위기를 완화할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노동을 잃은 인간이 겪을 실존적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이데올로기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 현상 → 설명 →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즉, 사회적 현상이 발생했을 때 이를 설명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체계적 사고틀입니다.
서울대학교 유우익 교수(前 교무처장, 前 대통령 비서실장)는 2019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펠로로 독일 로베르트 보슈 재단을 방문하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이미 그 당시부터 행정·세제·규제 등 정책 차원을 넘어, AI 시대의 도래를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장차 시민들이 겪게 될 존재론적 불안을 완화하는 ‘쿠셔닝 이펙트(cushioning effect)’로 작용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AI 시대, 초일류사회는 미래를 설계하고 후진사회는 과거에 천착합니다. 이제 우리 사회 역시 기술의 외연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노동의 의미를 다시 묻는 근원적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