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흔히 철학이라고 하면, 유명 철학자들의 이론을 배우고 해석하며 토론하는 다소 어려운 학문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저자는 말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철학이 아니며,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사용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즉, 과거의 사상을 반복적으로 되새기거나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질문하며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 가는 일이야말로 철학이라는 것입니다.
최초의 철학자는 탈레스였습니다. 그는 신의 권위에 의존하던 시대에 홀로 사유하며, 세상의 이치를 자신의 언어로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이 주장이 과학적으로 정확한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신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용기’가 철학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고대 주나라에서도 비슷한 사유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기나라의 한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까 걱정하자, 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땅은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니 그럴 리가 없소.”
물론 ‘기’라는 개념은 현대 과학과는 거리가 있지만, 초월적 존재인 천명(天命)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로 세상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철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철학적 사유를 멈추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운명에도 비극이 찾아옵니다.
근대 서구 열강의 침략이 그 한 예입니다. 서양에서는 베이컨을 비롯해 철학적 사유가 이어지며 사회와 기술의 발전이 끊임없이 이루어졌습니다. 반면 동양은 기존의 질서에 안주했고, 사고의 방향을 새롭게 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전략적 사고 대신 전술적 대응에 그쳤고 역사의 주도권을 내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은 1840년 제1차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하고, 이어 제2차 전쟁에서도 굴욕을 겪었습니다. 난징조약과 베이징조약이라는 불평등한 협약이 그 결과였습니다.
반면 일본은 서구의 함포에 의해 개항했지만, 불과 20년 뒤에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스스로 함포외교를 펼칠 만큼 변모했습니다.
사유의 방향을 바꾼 자는 살아남았고, 그러지 못한 자는 역사의 수동적 존재로 남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철학은 고루한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입니다. 그리고 그 시선이야말로, 탁월한 사유의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