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멈춤, 그리고 창업자로서 다시 던진 질문 #20250615
며칠 전,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급히 제주도로 향했다. 새벽 비행기로 장례식장에 도착해 짧은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작별 인사를 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뒤, 남은 시간 동안 나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바쁘게만 달려온 나날 속에서 허락된 이 멈춤은 나를 고요하게 만들었다. 제주도는 여전히 느린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의 빠른 리듬에 익숙해진 내게 그 느림은 낯설지만 깊은 위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흘러가고, 나는 그 속에서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고향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나를 사람으로 되돌리는 힘이 있다. 그 짧은 하루 동안, 나는 다시 ‘지금 나는 잘 가고 있는 걸까?’라는 오래된 질문을 꺼내 들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척들과 어르신들 대부분은 조용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우리 집안엔 사업을 하는 이가 거의 없기에, 내가 창업을 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놀랍고도 신기하게 비춰졌다. “정말 대단하다”, “제주도에서 이런 일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는 반응 속에서, 나는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도움을 받지 못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는 이 고향의 자랑이 되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 기대를 등에 업고, 다시 돌아갈 용기를 얻었다. 장례식을 마치고 혼자 바닷가로 향했다. 마지막 비행기를 타기 전, 바람과 파도 소리 사이에서 나는 내게 물었다. 나는 왜 이 일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가? 제주도에서의 그 짧은 하루는 나를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았다.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었고, 외로움을 인정할 수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멈춤은 감정만이 아니라 제품 방향성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도 이어졌다. Outcome은 그동안 매출이 발생하는 영역을 중심으로 제품화해왔다. 수요가 있는 지점에서 MVP를 만들고, 기능을 덧붙여 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품은 점점 복잡해졌고, 경쟁사 대비 차별성은 옅어졌다. 제품은 단순히 ‘많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되는 것’이어야 했다. Swit의 사례처럼, 모든 걸 담은 제품은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바닷가에 앉아 있던 그 순간, 나는 우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Outcome이 만들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리드제공툴이 아니다. 기업에 속한 개인이 스스로 실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B2C형 AI 세일즈 에이전트다. 아침에 Outcome Agent를 열면 오늘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제안받고, 클릭 한 번으로 후속조치까지 자동화되는 구조. 정보만 제공하는 경쟁사와 달리, 우리는 사람을 학습하는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
Outcome Agent는 고객이 아니라 ‘영업자’ 중심의 제품이다. 온보딩 단계에서 사용자의 말투, 업종, 세일즈 경험을 학습하고, 그에 최적화된 타깃과 메시지를 자동으로 설계한다. 더 이상 많이 보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된 타이밍에, 적절한 메시지를, 정확한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Outcome이 향하는 방향은 그 실행력을 자동화하고 내재화하는 것이다. 진짜 문제를 푸는 도구. 누구보다 사용자의 세일즈 일상을 이해하는 제품. Outcome은 이제 그 방향으로 다시 정렬되어야 한다. 제주도에서 돌아오는 길, 나는 Outcome을 다시 작고 뾰족하게 만들기로 다짐했다. 진짜 필요한 일을 하고, 진짜 가치를 주는 제품을 만들자. Outcome Agent는 그렇게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Outcome이라는 회사를,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의 문제를 푸는 과정을 나는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이 일이 나를 지치게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 있게도 만든다. 그런 감정을 안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고, 돌아오자마자 코엑스 전시회 ‘이커머스 피칭 페스타’에 참가했다. Outcome 이름으로는 처음 열어본 전시 부스였고, 현장에서 우리는 회사를 소개하며 작지만 의미 있는 상도 하나 받았다. 어찌 보면 작은 시작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느껴진 것은 부족함이었다. 고객과의 첫 대면에서 메시지는 날카롭지 못했고, 준비한 모든 것은 미흡했다. 전시가 끝난 후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질문했다. “우리는 이 경험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 단순히 해봤다는 기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경험을 팀 전체의 학습으로 확장하고, 실질적인 성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가 경험 있는 팀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자주 부딪히고, 더 깊이 관찰하며, 더 빠르게 배워야 한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부끄러운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이다. Outcome은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나는 그 부족함이 ‘포기’가 아닌 ‘의지’로 채워지길 바란다. 우리 팀은 빠르게 배우고 있고, 팀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나 역시도 때때로 불안하지만, 이 일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있고, Outcome을 통해 세상에 문제를 푸는 방식을 제시하고 싶다. 우리는 아직 멀었지만, 그 방향은 분명히 옳다고 믿는다. 지난주는 내게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할머니와의 작별, 고향에서의 재정비, 그리고 서울에서의 실행. 나는 다시 돌아왔고,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젠가 Outcome이 진짜 의미 있는 회사가 되고, 그걸 통해 제주도를 빛낼 수 있다면, 그때 나는 할머니 앞에서도 조금은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