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한국 국민이 놓치고 있는 것

by 도하링

초가을 산에 오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라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를 채집하며 생명의 힘과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했다. 내가 키운 곤충이 알을 낳고 다시 성충으로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물학적 호기심도 충족할 수 있었다. 작은 생물이지만 그 안에는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질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애완곤충은 화려한 외형과 쉬운 사육 난이도 덕분에 거부감이 적다.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부모라도 애완곤충만큼은 허락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딱정벌레목은 인공 번식이 가능하고, 크기가 크지 않아 유통에도 큰 어려움이 없다. 이러한 조건 덕분에 애완곤충은 산업으로 발전하기에 적합하다. 실제로 오늘날 애완곤충은 전문적으로 번식되어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어린 남자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만큼 수요도 꾸준하다. 그러나 한국의 환경 정책 탓에 산업의 성장 가능성은 크게 제한되어 있다. 한국은 외국 곤충의 수입을 법으로 금지해 왔고, 이는 곧 곤충업계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환경부는 생태계 교란 가능성을 이유로 들었으며, 그 우려 자체는 일정 부분 타당하다. 하지만 종별 특성과 위험도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금지한 탓에 산업 발전을 저해한 것도 사실이다.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산업은 위축되고 다양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구나 생태계 파괴 우려가 없는 토종 곤충까지 금지 대상에 포함되면서 업계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도의 고유종인 두점박이 사슴벌레다. 환경부는 멸종 가능성을 이유로 오랜기간 상업적 유통을 금지해 왔다. 그러나 업계는 이미 딱정벌레목 생물이 인공 번식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민간은 자연에 악영향이 없음을 강조하며 상업적 유통 허가를 요구했고, 결국 2025년 환경부는 제한적이지만 이를 수용했다. 이후 업계는 약속대로 인공 번식을 통해 개체 수를 늘렸으며, 같은 해 8월에는 방사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는 단순히 산업적 수요를 충족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멸종 우려를 불식시키고 종 보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의 과도한 통제와 규제 아래에서는 산업도, 다양성도, 지속 가능한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대로 민간의 자율성과 경쟁이 보장될 때 문제는 더 효율적으로 해결되고 새로운 발전의 길이 열린다. 두점박이 사슴벌레 사례는 자유로운 시장과 책임 있는 민간의 참여가 산업과 보전을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곤충 산업만의 특수한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급격한 혁신을 겪은 물류 산업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 과거 한국의 배송 서비스는 우체국이 독점적으로 담당했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균등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민간 참여를 제한했다. 그러나 도시화와 산업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우체국만으로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었다. 효율성은 떨어졌고, 국민 편익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후 정부가 민간 택배업체의 진입을 허용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한진, 대한통운, 로젠과 같은 기업들이 등장하며 배송 속도와 효율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졌다. 국민은 더 빠르고 저렴하며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게 되었고, 산업 전체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공공성을 이유로 민간 참여를 막았던 시기보다, 권한을 민간에 이양했을 때 오히려 더 큰 공공성과 편익이 실현된 것이다. 곤충 산업과 물류 산업의 성격은 다르지만, 국가가 독점하던 권한을 민간에 이양했을 때 산업이 도약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교훈을 준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화’라는 단어에 쉽게 흔들린다. 유신체제하의 독재를 경험한 세대에게 정치적 자유는 절박한 갈망이었고, 그 기억은 집단적 무의식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억압받던 시절, 국민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민주화’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민주적 절차가 분명히 보장되고 있다. 이미 두 차례 최고 권력자가 탄핵되었고, 후임자 또한 같은 절차를 통해 선출되었다. 정치적 자유가 제도적으로 확보된 지금, ‘민주화’라는 구호는 더 이상 새로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단어가 여전히 사회적 울림을 주는 이유는 국민이 정치적 자유를 넘어 더 직접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민이 요구하는 자유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 영역에서의 자유일 것이다.


두점박이 사슴벌레와 물류 산업의 사례는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발전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민주화’라는 구호는 거꾸로 정치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이미 민주적 절차가 보장된 상황에서 민주화를 계속 강조한다면, 국민은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시민단체가 등장해 정부의 역할 일부를 대신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겉으로는 국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부 권한의 확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원자력 발전 확대를 막아선 환경단체의 운동은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켰고, GMO 수입을 전면적으로 반대한 소비자단체는 국내 농업의 연구개발을 뒤처지게 만들었다. 또 재개발 사업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한 일부 시민단체는 주거 환경 개선을 지연시켜 오히려 주민들의 권익을 침해했다. 이처럼 시민단체가 정부 권한을 대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결과적으로 생산과 경쟁을 가로막으며, 정부와 마찬가지로 시장을 규제하는 셈이 된다.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한다 해도 결국 정부의 병폐를 반복할 뿐이다. 생산의 주체는 언제나 민간에 있으며, 민간은 생산 효율을 위해 정부의 과도한 규제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의 목적이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권력을 대체하기 위함이라면, ‘민주’라는 개념의 목적성은 불분명해진다. 이러한 오류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구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서로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정치적 자유가 선거, 표현, 집회 등 권력으로부터의 권리를 뜻한다면, 경제적 자유는 생산과 소비, 거래 과정에서 개인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한국은 민주적 절차와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권리는 상당 부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영역에서는 여전히 과도한 규제와 국가 개입이 존재한다. 결국 오늘날 한국 사회가 갈망해야 할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경제적 자유다.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1위를 자랑하는 통신업계의 사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국통신(KT) 민영화 이후 민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통신 요금은 크게 인하되고 서비스 품질은 향상되었다. 통신 산업에서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자 소비자는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나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었고, 기업은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직접 산업에 투자하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라는 구호는 이미 이뤄낸 가치를 억지로 차용해 정치적 목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성취된 요소를 달성해야 할 과제처럼 여기는 것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과거에 추구했던 가치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다르다는 점을 자각해야 의미 있는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필요한 것은 민주화가 아니라 ‘민영화’다. 정부가 보유한 기업, 자산, 권한을 민간에 이양함으로써 경쟁과 발전을 촉발해야 한다. 경제 권력이 민간으로 이전될수록 창업 기회는 확대되고 일자리 창출의 가능성은 넓어진다.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될 때 국민은 더 다양한 선택과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으며, 사회 전체가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 민주화가 과거의 과제였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민영화다. 그것이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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