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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민권 따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름하여, 이민자의 딜레마 끝판왕!

by Fresh off the Bae

요즘 미국 한인사회는 영주권자인 40대 과학자 구금 소식에 술렁인다. 나도 미국 영주권자인지라, 기사를 보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동생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귀국길에 샌프란시스코 공항 입국 심사 중 구금되었다고 한다.


영주권자인 나에게도 입국 심사는 늘 조마조마한 일이다. 범죄경력도 없고 조용히 살아온 나이기에 별일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번 조여 오는 가슴을 붙잡게 된다. 내 차례가 다가오면 나는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가장 순수한 얼굴의 가면을 꺼내 쓰고, 입술에는 미소를 띤 채 조심스레 심사관에게 다가간다.


한 번은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가 영주권 카드를 지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것도 돌아오는 날 깨달았다. 얼마나 놀랐던지 순간 눈앞이 깜깜해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를 실감했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부모님을 한국에 도착했을 때 잠시 인사만 드린 후 두 번째로 뵙는 자리였다는 거다. 남편과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당시 항공사에서는 비행기 탑승은 가능하지만 LA에 도착했을 때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다고 안내했다. 우리는 급하게 미국으로 전화를 걸어 근처에 살고 있던 시누이에게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내 영주권 앞 뒷면을 찍어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여차저차 비행기는 탈 수 있었고, 2차 심사대로 넘어가게 됐을 경우를 대비해 여러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LA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다시 한번, 아주 순수한 '슈렉 고양이 눈'을 하고, 입국심사관에게 '제발요' 눈빛을 발사했다.


Photo by Ivan Lopatin on Unsplash


그는 내 간절한 눈빛을 보며 말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통과, 뒷면이 나오면 2차 심사로 넘겨질 거야.


결과는? 통과!


Photo by Ray Hennessy on Unsplash


(남편은, 바보냐고, 심사관이 장난친 거라고 했다... 내가 바보가 됐든 눈치 없는 사람이든 뭐든 상관없다. 그저 너무 행복했다.)


그 후 다시 한국에 갔다 돌아올 때 영주권이 없으면 아예 비행기 탑승이 어렵다는 공지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속으로 '혹시 나 때문에 이렇게 바뀐 거 아냐...?' 하고 살짝 뜨끔했었다.




미국 시민권자인 남편이 한국에 입국할 때는 늘 어렵지 않게 통과한다. 하지만 미국 입국이 항상 문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입국심사에서 자칫 2차 심사대로 넘어가면, 정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물론, 영주권자이니 비자신분보다는 낫겠지만, 이번 영주권자 구금 사태를 보며 또 영주권자로 미국에서 사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영주권자로 지낸 지는 이미 5년이 넘어 시민권을 신청할 자격은 된다. 그런데, 시민권을 신청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이미 핸드폰 번호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에서도 이방인이 된 지 오래지만, 그렇다고 국적을 바꾸는 것도 뭔가 내 국가를 배신?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30년을 산 내 나라이기에, 장점과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한때는 절망감이 들어 한국을 떠났지만, 내 이면에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권을 신청한 주변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저마다의 좋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가족에게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부부 중 한 명이라도 시민권자가 되면 훨씬 든든하다는게 공통된 생각이었다. 또 미국에서는 결혼 후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의 성이 다르면 아이들 사이에서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나 놀림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요즘은 다양한 가족형태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 나도 아이가 생기면 시민권을 신청할 좋은 이유가 생기는 건가?


내가 미국 시민권자가 되면 한국인이 아닌 게 되는 건가? 국적이 바뀌더라도,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한국인인데?




내 보스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콜롬비아 이민가정 출신의 히스패닉계이다. 스페인어를 쓰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완벽한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미국 문화뿐 아니라, 콜롬비아 문화도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축구 경기가 있을 때면 콜롬비아 대표팀 티셔츠를 입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콜롬비아를 응원하며, 그녀의 쌍둥이 아들들 역시 콜롬비아계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럼 나도, 국적이 미국인이 되더라도,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건가? 아니, 자랑스러워해도 되는 건가?


요즘 들어 여러 흉흉한 소식들이 들리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미국 시민권을 따느냐의 문제는 단지 정체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세금과 같은 현실적인 고려사항도 있고, 한국에 장기 체류하려면 차라리 시민권자가 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도 있다. 영주권자는 최소 6개월을 미국에 거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십 년간 갖고 있던 나의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진다는 사실도 왠지 모르게 낯설고 조금은 씁쓸하게 느껴진다.


이 고민은 내가 미국에 사는 한, 그리고 시민권을 선택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맴돌게 될 질문인 것 같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Wesley Tinge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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