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
아브라함은 그 이름의 의미 그대로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이자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추앙받는 신앙의 조상입니다. 그의 삶을 바꾼 결정적 계기는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주님의 부르심과 그의 떠남에서 비롯됩니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일은 아브라함에게 두려운 마음을 불러일으켰지만 사랑하는 아내 사라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는 설레임도 있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그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종족이 복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을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결심했습니다. 다른 나라로 떠나 그곳에서 살기로 말입니다. 한마디로, 이민(移民, Immigration)입니다.
우리 본당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많습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혹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 아니면 가족의 초청으로 이민을 온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분이 이민왔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이국 땅에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말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 적응하려 애썼지만 당황스러운 일, 모멸감을 느낀 경우도 많았을 것이고, 시련과 고생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민에 대해 후회하거나 떠남을 한탄한 적도 있었겠지만 오직 생계와 생존을 위해 애쓰다보니 한생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수혜자가 아니라 복을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이민 1세대 역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식과 가족을 위해 복을 나눠주는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는 복을 받은 자식들이 행복한 모습을 통해서, 더 나아가 이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언젠가는 보답을 받으리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에서 일어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 예를 들어 사건과 사고, 재산의 손실, 무엇보다 건강과 안전의 위협은 믿음과 희망보다는 현실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다가오시어 손을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7,7). 그제서야 우리를 감싸던 두려움과 걱정, 불안이 떠나고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민자들의 땅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에서 남들처럼 살았더라면, 혹은 이국만리 떠나지 않았더라면 신앙이라는 것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부르심과 떠남, 무엇보다 이민과 삶의 의미를 다시 새겨 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2티모 1,9-10).
우리 삶의 의미는 죽음 너머 생명과 불멸을 보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한때 미국으로 이민와서 한생이 모든 것인줄로 알고 살았다면, 예수님을 만나 삶의 의미를 깨닫고 인간 모두가 이땅에서 이민자이자 나그네임을 알게 됩니다.
마침내 우리 삶의 부르심의 의미를 깨닫고 처음부터 준비되었던 마지막 부르심에 응답해야 함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로의 마지막 이민입니다. 이땅에서는 불가능한,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영주권과 하늘나라 시민권을 선물로 받으러 떠나야 합니다.
뒤돌아보니 한생이 꿈만 같습니다.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 시간이 야속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제 마지막 이민을 준비합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복을 받기 위한 눈부신 변모를 준비하며 감정의 찌끄레기, 양심의 먼지, 죄의 더러움을 털어 버립니다. 그리고 복음을 통해 주어지는 생명과 불멸을 생각하며 남은 삶에서 필멸의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한생을 통해 내가 나누어 줄 수 있었던 복에 감사하며, 나를 통해 이 세상에 어떤 생명과 불멸이 남을지 궁금함을 뒤로하고 말입니다.